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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살해를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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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살해를 찬양하라
  • 김광호
  • 승인 2023.02.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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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여양중학교 교사

신세대여! 그대들에게 감히 독립적인 삶을 허락하노니 펄펄펄 창공을 날으소소.

'파트로크토니아(Patroktonia)’라는 단어를 아는가? 그리스어로 '친부살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버지를 의미하는 파트로와 살해를 뜻하는 크토니아로 이루어진 단어다.

그리스의 신화를 읽다 보면 이러한 친부살해의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신화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이러한 신화를 아이들에게 강력히 권장하고 한다. 아니, 일상의 생활 곳곳에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언행을 엿볼 수 있다. 혹 조병화 시인의 시, 의자를 기억하는가? 전문을 잠시 감상해 보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오십 대 전후의 기성세대라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 시를 배웠을 것이다. 혹 배우지 않았더라도 시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자는 세대를 이어주는 생명줄을 상징한다. 만약 신세대가 이 의자를 기성세대에게 물려받지 못한다면 신세대는 삶에서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 어린아이의 의식 구조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의자를 받아 앉을 수 있다면 어른 대접은 물론이요, 기성세대의 축에 들어가 당당하게 삶을 노래할 수가 있다. 다만 조병화 시인의 시, 의자에서 다소 아쉬운 점을 찾을 수 있다. 의자를 넘겨주는 과정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냥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됐으니 어른 대접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어른이라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데, 이 시에서는 나이가 들었으니 관례에 따라 어른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그동안 너희가 기성세대의 말을 잘 따랐으니 이제부터는 너희도 ‘우리’라는 기득권에 들어올 수 있는 특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의 신화, 친부살해 이야기를 보면 잔인할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신화 속에는 삶의 본질을 숨기고 있다. 독자는 그 신화 속에서 삶의 지속성을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신화에게 대화를 청해보자. 친부살해의 대표적인 주인공은 크로노스와 제우스이다. 둘 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자신이 권력을 움켜진다. 그리스인들은 왜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꾸며냈을까? 더불어 서양인들은 왜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걸까?

그리스인들은 역사의 진실을 친부살해로 해석했던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앞선 세대를 비판하고 쫓아내야만 새로운 세상을 온전히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났던 세대 간의 갈등을 친부살해라는 스릴넘치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서양인들이 이런 신화를 아이들에게 권장하는 이유는 신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기 위해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과감한 도전과 응전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한다는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너희도 신화의 주인공처럼 큰 꿈을 꾸기 위해서는 현실에 절대 안주해서는 안 된단다. 먼 훗날 우리가 없더라도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집밖으로 나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대면하면서 너만의 힘을 길러야 한단다. 우리도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 어른이 되었단다. 삶은 모험 속에서 그것을 견뎌낼 슨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란다. 그리고 종국에는 삶에서 홀로 우뚝서야 한단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기성세대는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우다보니,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상자 속에 그들을 가두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그 상자 속에서 생활하면서 정해놓은 규칙과 관습에 따라 살아주기를 원한다. 그저 말을 잘 듣고 조용히 살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한다.

정말 아이들이 부모와 사회 그리고 국가가 바라는 말만 잘 들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기성세대는 이런 마법 같은 세상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 또한 부모 세대에게 말대꾸나 반항을 해보지 않았기에 마치 삶에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만약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말 속에 갖혀 살았다면 죽을 때까지 어두운 땅속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하루살이의 삶에 자유와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물리치고 형제들을 구해 지하의 세계를 벗어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으니 그가 아버지에게 행한 행동은 가히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성세대여! 그리스의 친부살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도 내 자식은 귀하고 소중하니 그대의 품 안에서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들을 두 번 죽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고 있다. 그런 삶에 대비해야 할 훗세대에게 시대 착오적인 지식이나 아집을 강요하지 말자. 그렇다. 우리 모두는 삶을 처음 살아본다. 어른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주어실 현실의 숙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 누구도 삶의 틀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린 한 번밖에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는 우리 모두는 삶에서 주연 배우로 살아야한다. 아이들이여!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성을 거세하고 땅으로 뛰쳐나왔던 것처럼, 제우스가 형제자매를 아버지의 뱃속에서 구해냈던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아라.

그대가 한 아름의 시련과 살을 가르는 고통을 맛보겠지만 그 시련과 고통은 그대에게 자유지수를 높여 줄 것이며 행복지수 또한 충만할 것이다.

신세대여! 그대들에게 감히 독립적인 삶을 허락하노니 펄펄펄 창공을 날으소소. 그대들은 머지않아 우주의 주인공이 되어 붕새처럼 천지를 날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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