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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는 국민의 규범일 때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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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는 국민의 규범일 때 의미 있다'
  • 박 관
  • 승인 2022.11.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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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교육칼럼니스트

규범(規範). 상식과 가장 잘 통하는 개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본의든 아니든 여러 모임이나 단체에 소속되기 마련이고 그 모임에서 리더(Leader)는 큰 역할을 해나간다. 하찮은 것 같은 계모임의 리더도 역량을 발휘하고 모임을 이끌어 나간다.

옛날 지도자의 조건은 잘나고, 우격다짐도 있고, 적당히 허세를 부릴 줄도 아는 사람이 적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사는 대한민국의 사회에서는 말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지도자의 덕목은 진정한 소통과 나눔이다.

새 정부가 탄생 되어 반년이 흐른 지금 그에 대한 성과는 나중으로 하고 기억나는 것이라곤 늘 변명과 억지 주장뿐이다.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한 것을 필두로 ‘바이든’, ‘날리면’의 해괴망측한 주장을 시종일관 적용해 MBC 방송사를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옹졸한 모습을 보였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T.V가 처음 보급됐을 때 동네에서 부잣집에 설치되어 큰 행사나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이면 모두가 그 집에 모여 T.V를 시청했었다. 그런데 그 집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너는 우리 집에 T.V 보러 오지 마”하고 따돌림을 한다.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서운했던지. 이번 MBC 방송사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사건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그 당시의 추억이다.

그 집 아들은 그나마 주인이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겠지만 이 정부는 전용기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행세를 하는 못된 처신에 50여 년 전 그 집 아들이 부렸던 권세는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자유의 가치만을 그렇게 부르짖던 이 정부가 이젠 그 끈을 놓으려나 보다. 그래서 탈북단체에서 북한으로 보낸 전 단지를 단속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좋다. 그것까지는 정치적인 상황쯤으로 넘기기로 하자. 전임대통령이 “북한에서 받은 풍산개를 키우기가 어려워 국가에 반납하겠다”고 했다. 그 애로사항을 말하기 무섭게 정치계의 파트너였던 사람들이 전임지도자를 늑대들이 먹이 사냥하듯 물어뜯는다.

“개 2마리도 관리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국가를 관리할 수 있었겠는가”, “사료값이 아까우면 개 키울 자격이 없다.”

이러한 논평으로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매장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태극기 부대 정도의 인간이라면 그래도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하지만‘대통령 시절에 타 국가로부터 선물 받은 물품은 임기가 끝나면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그런 의사 표현을 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인사들이 그런 야비한 방식으로 상대를 헐뜯는 모습이 어이없다.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금도(禁徒)가 있다. 치열하고 각박한 상인들의 사회에서도 상도(商道)가 있고, 완력으로 모든 것이 결판나는 건달의 세계에서도 의리가 있듯이 정치계에서도 정도(政道)가 있어야 할진대 불행하게 아무것도 없다. 

조폭이나 강력범 사범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검사들이 가장 잘 다룬다. 성향이 맞기 때문에 잘 알아차릴 수 있어서이다. 그것은 범죄자들을 다루기에는 용이한 일이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런 기술만을 가진 자가 지금의 대한민국 지도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규범을 국민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제왕적 지도자의 통치 방식이다. 거기에 반하여 국민이 가진 생각을 정돈하고 규합하여 국민의 규범과 하나가 되도록 애쓰는 지도자가 민주적인 통치 방식이다. 모든 국민이 아는 규범조차도 모르는 지도자가 무슨 공정을 논하며 상식을 이야기할 수 있으랴. 

노자(老子)는 지도자의 단계를 4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가장 뛰어난 자는 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둘째는 ‘아래 사람들이 그를 가깝게 여기고 기린다. ’셋째는 ‘그를 두려워한다.’ 마지막으로 ‘그를 업신여긴다’이다. 

이러한 논리로 보자면 이 정부는 첫째와 둘째는 아예 버리고 셋째 정도를 추구하려나 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언론인들에 대한 고압적인 자세가 그러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정무감각이 그러하다. 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인간적인 삶이요, 하늘의 축복을 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고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현 정부는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바꾸기를 식은 죽 먹듯이 쉽게 한다. “MBC 방송사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동맹과의 관계를 이간질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을 위하여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명분을 버리고 ‘도어스테핑’을 임시 중단한단다.

“개야 짖어라. 나는 나 방식대로 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통치자의 사고(思考)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혹여 죄인들을 상대로 강하게 밀어붙이면 이 녀석들 꼼짝없이 우리 손에 잡히겠지하는 검찰 문화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모두가 다 투명하게 드러나 있는 대통령의 입장이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리고 있는 현 검찰총장의 처지보다도 취약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본인이 검찰총장 시절에 누렸던 특권을 대통령이 된 후까지도 그 연장선에서 만끽하려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다. 실수는 때론 인간적이어서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거짓말은 전혀 용납될 수 없는 응징의 대상일 뿐이다.

누가 가짜뉴스를 만들었고, 누가 억지 주장을 하는지는 만천하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적어도 세종대왕님이 만들어 놓은 한글을 배웠고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일반 국민이 가지고 있는 규범을 함께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면 자격이 없다. 그에게서 국민에게 보여 줄 감동을 기대할 수 없고 국민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메신저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아! 대한민국은 여기에서 얼마나 더 정체돼 있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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