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야, 미안해! 소상공인 주제에 소고기 사 먹어서. ‘영희’가
상태바
○○야, 미안해! 소상공인 주제에 소고기 사 먹어서. ‘영희’가
  • 김두헌 기자
  • 승인 2022.05.12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동주∥전 영광교육장

조선 시대에는 소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소의 식용(食用)을 원칙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사상이 팽배했던 그 시대에는 오직 소 덕분에 농사를 손쉽게 경작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밭을 갈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데 당시 소의 역할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소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행여 몰래 잡아먹는다면 소의 원한으로 필시(必是) 가뭄이 들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인 시대였습니다.

특히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 때에는 가뭄이 심했는데 승정원에서는 소를 잡아먹은 백성들이 적지 않아 이런 어려움을 당했다며 그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진언(進言)하였다고 하니, 백의민족(白衣民族)다운 순박한 조선 사회의 일면을 보는 듯 합니다. 이처럼 한낱 ‘소’라는 동물에게까지 신앙 같은 믿음과 배려가 시대의 저변에 도도하게 흘렀으니 과연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습니다.

인구 14억 명의 인도(India)를 중심으로 세계 인구의 약 15%인 11억 6천만 명이 믿는 힌두교(Hinduism)는 소의 식용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신성시(神聖視)하고 있습니다. 암소가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 신을 모시는 시종(侍從)이기 때문에 소를 숭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도가 소의 식용을 금지한 역사적 이유는 우리의 조선 시대와 그 맥을 같이하니 인류 문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도 조상은 아리아인(Aryan)이었는데 그들은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본래 소와 유제품을 필수적으로 섭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역사는 기원전 1,5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던 아리아인들은 불편한 유목 생활을 접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자연스럽게 소를 식용 대신에 농사를 짓는데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농사에 유용한 소를 잡아먹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게 됐으며 급기야 힌두교에서는 ‘소는 신이 깃든 성(聖)스러운 존재’라는 종교적 믿음을 교리에 추가하면서 인도에서 소는 성스러운 동물로 등극하게 됩니다.

1949년 우리나라는 소고기의 공급이 부족하자 매주 수요일을 음식점과 가정에서 소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하는 무육일(無肉日)을 지정해 운영하는 해프닝(happening)이 있었습니다. 먹거리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억압의 시대였지만, 그 보다도 지지리도 못살았던 우리 부모 세대의 배곯은 아픔이 새록새록 한이 되어 남습니다. 

그 후, 이 무육일은 계속 이어져 1956년에는 매달 25일을 무주무육일(無酒無肉日)로 확대 재생산되어 소고기뿐만 아니라 술도 팔지 못하도록 하기에 이릅니다. 팔지도 않았지만, 사실 살 사람도 많지 않은 한(恨) 많은 보릿고개의 시절이었습니다. 맹물로 허기(虛飢)를 달래가며 가난을 숙명처럼 보듬고 살아야 했던 몹시도 아픈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모두의 피와 땀과 눈물을 자양분 삼아 세계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니 우리 민족의 소리 없이 강한 막강 저력에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5천 달러에 이르는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G7 국가인 이탈리아를 뛰어넘었으며, ‘코로나19’의 위기 속에도 경제 규모 또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이제 보릿고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고, 소고기 정도는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난 4월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소상공인 손실 보상책을 발표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돈(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가)국고를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정도 형편이 괜찮으신 분은 돈을 받으면 소고기를 사서 드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뻔뻔하고 경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 “보상금으로 소고기를 사 먹든 돼지고기를 먹든 사용 내역까지 보고해야 하는가?”
→ 자영업을 하는 조모씨 “소상공인들이 도둑질해서 돈 번 것도 아닌데 소고기 먹는 것도 눈치 보며 먹어야 한단 말인가?”

→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대 공동대표 “국정을 논하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역류시킨 당사자가 한 말이니 그 정도의 소아병(小兒病)적 수준일 것이라 예측은 했으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저급한 인식과 쪼잔한 안목, 그리고 그 천박한 우월감에 다시 가슴이 아립니다. “인생은 오직 뒤를 돌아보아야만 이해된다”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의 말처럼 자신이 걸어온 추한 배신의 길을 마지막 남은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부디 반추해 보길 바랍니다.

시인 정지용의 ‘얼룩백이 황소’가 소리 죽여 우는 동구 밖 실개천에 긴 팔 내린 수양버들 하늘거립니다. 송아지의 보드라운 솜털처럼 잠시 깊었던 봄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또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다시 새봄이 오지 않을까 그것이 마냥 두려울 뿐입니다. 

“○○야, 미안해! 소상공인 주제에 소고기 사 먹어서. ‘영희’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