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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꽃몸살을 앓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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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꽃몸살을 앓듯
  • 장옥순
  • 승인 2022.05.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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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순∥'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외 다수 저자

열흘 넘게 앓았다. 혹독하게 아팠다. 세상이 달라보였다.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절절하게 느꼈다.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아프면서도 누워 있는 고통에 힘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픈 사람임을 처절하게 느꼈다. 해마다 봄이 가기 전에 치르는 연례 행사로 몸살을 앓았는데 올해는 갑절이나 길게 아픈 셈이다.

건강해서 걸을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음이, 일상의 반복이 얼마나 축복인지 깨달았다. '살아 있음은 일하는 것'이라 했던 에디슨의 말이 이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문밖 출입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흔들리는 몸은 생존을 향해 나를 불러 세웠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고 배고픔조차 무시해서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서 생긴 결과였다. 어쩌면 삶의 의욕이 저하되어서, 시간을 죽이듯 그럭저럭 대충 먹고 건강을 살피지 않은 탓이 컸다.

아프고 나니 본능에 충실해졌다. 세 끼 식사에 신경을 쓰고 일하는 순간이 소중해졌다. 책을 읽을 수도, 걸을 수도 없어 자식에 의지해서. 약에 의지하며 겨우 연명했다. 어느 한 순간 생명의 끈이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닥칠 수 있어서인지 나약한 눈물이 아무때나 흘렀다. 이미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그리워서 힘들었다. 그러니 떠난 이들은 결코 떠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열흘 넘게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본 딸아이가 독립을 선언했다. 2년 가까이 외손녀 육아로 심신이 지친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더 계속했다가는 감당 못할 큰 일이 생길까 봐 힘들더라도 스스로 견뎌내고 싶다고 했다. 나도 더 돕고 싶지만 이젠 일이 무서워졌다. 가끔 도움의 손길을 원할 때는 언제든 달려갈 생각이다. 한창  예쁜 모습을 보여주며 쑥쑥 자라는 외손녀는 이제 주말에만 함께 하기로 했다. 봄꽃이 저절로 피지 않듯, 노인도 봄을 앓아야 더 익어가나 보다. 

이제 다시 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온종일 돌봄에서 아침 저녁 돌봄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늘 바쁘고 피곤했다. 더 늙기 전에, 더 아프기 전에 적극적인 자유 시간을 만들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찾아 도서관부터 다닐 생각을 하니 힘이 난다. 아프기 전에 메모해 둔 글을 보니 지금의 나에게 하는 금언으로 다가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노인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에밀,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움 외에는 집착하지 마라. 네게 주어진 조건 안으로 네 욕망을 국한시켜라.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라. 필연의 법칙을 도덕률로 삼아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읽는 법을 배워라. 삶을 관조함으로써 초월하는 법을 배워라.

역경 속에서는 견디는 법과 의무에 충실히 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너는 운명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며 행복할 것이다. 욕망의 파도에 아랑곳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것을 갖고 있을지언정 깨지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풍족할 것이다.

세론에 지배받지 않는 너는 언제까지나 자유로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잡혀 전전긍긍하는지, 삶이 끝나는 순간 존재하기를 그친다고 생각하는지, 집착의 굴레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하지만 삶이 덧없음을 아는 너는, 죽는 순간 다시 존재하기 시작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죽음은 악인에게 있어서는 삶의 끝인지 모르지만, 올바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시작인 셈이지. -루소의 '에밀' 중에서

청년기에 읽고 희망을 품었던 책, '에밀' 에서 뽑아 놓은 글이다. 서양철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루소의 '에밀'을 교육학을 공부하며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부분이다. 그때는 이런 대목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십대 후반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끝까지 읽어낸 '에밀' 덕분에 한 때는 루소를 존경했다.

40년도 더 넘은 그때 읽었던 '에밀'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글씨가 작고 세로 쓰기라서 도저히 읽을 수 없지만 추억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도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는 호사를 즐기던 젊은 날의 아픈 줄무늬가 아로새겨진 책이다.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던 영혼 속에 들어온 책이라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 책 정리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버리지 못했다. 사려 깊고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모르고 읽을 때와 알고 읽을 때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학의 거봉으로 꼽히는 그가 자신이 낳은 자식은 단 한 명도 기르지 않고 모두 고아원에 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사상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루소는 행동하지 못해서 글로 쓴 작가에 불과하다고.

그럼에도 그가 교육사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는  교육사상가로서 선구자였으니 새로운 물줄기를 낸 위대한 사람임엔  분명하다. 위대한 생각은 훌륭함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뒤흔들거나 혁신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루소의 사상은 간디에게로, 다시 소로에게 이어져서 자연주의 철학 사상을 세상에 흩뿌렸다. 그것은 다시 인권 사상으로 인본주의로 인간의 존엄성을 넘어 생명존중 사상으로, 여러 갈래의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생각은 씨앗이다. 책이라는 밭에 뿌린 위대한 생각은 인류 역사를 정화시키며 소금 역할을 한다. 활자는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 행동 언어가 분명하다.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을 품고 있으니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산물이다. 다시금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 생각을 골라 내 삶의 한 페이지에 저장하며 나의 글밭을 가꿀 수 있는 이 순간이 더없이 고맙다. 살아 있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지금 , 이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꽃을 떨군 철쭉과 벚나무가 새순을 내느라 바쁘다. 꽃을 보낸 슬픔을 잊으려는 듯 앞다투어 연둣빛 새순을 자랑한다. 나무들은 슬퍼할 시간조차 아끼나 보다. 내게 이른다. '너도 그러라고. 슬픔을 안으로 삭여 새로운 삶의 씨앗을 삼으라'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곁에 다가와 잠을 청하는 우리 집 고양이가 행복한 듯 눈키스를 날린다. 음악을 들으며 집사 곁에서 평온한 잠을 청하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일 것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바쁜 출근길에 나설 딸아이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다섯 살 외손녀가 행복한 월요일을 시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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