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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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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나동주
  • 승인 2022.05.0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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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전 영광교육장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이 공동 저술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이 최근 우리나라 정치 상황과 맞물려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저자(著者)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비교한 끝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무너졌음을 발견하고 몇 가지 패턴화된 양상을 밝혀냅니다.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붕괴된다’는 그들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populist)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어 헤게모니(hegemony)를 쟁취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결코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 책은 모든 민주주의는 유사한 방식으로 무너지는데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가 보내는 신호는 매우 비슷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진단합니다. 이처럼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하는 신호는 먼저 통치자가 말과 행동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는가, 둘째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 셋째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가, 마지막으로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드는가 등인데 이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주범이라고 강조합니다. 벌써부터 낡은 외투처럼 너덜해진 우리의 휘어진 정치 현실과 결부시켜 보니 매우 불미(不美)스럽고, 심각한 위기의식마저 느끼게 합니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는 일간지 '엘 우니베르소'가 자신을 ‘독재자’로 칭하자 4천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승소했으며, 터키의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과 러시아의 푸틴(Vladimir Putin)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 대기업 '도안 야인'과 'NTV' 소유주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해 경영권을 상실하게 만드는 등 독재자들은 운동장 기울이기를 주도적으로 자행합니다. 이는 위의 네 가지 독재 감별 조건을 대부분 함의(含意)하고 있으니, 이 때마다 민주주의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것입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에게 권력을 넘기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는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며, 다른 하나는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 대선에서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듯 2030의 부화뇌동(附和雷同)식 표심(票心)이 첫 번째 착각에 해당되고, 수많은 정치 철새들의 변절 사유가 된 그들의 몰지각한 이해관계가 그 두 번째 착각으로 작동됐습니다. ‘경제 선진국’이라는 설익은 기대가 ‘정치 후진국’이라는 비아냥 앞에서 모두를 숙연하게 합니다. 바야흐로 온몸을 휘감아 도는 한기(寒氣)가 한반도를 강타했으니 우리는 아직도 불행한 동토(凍土)의 백성입니다.

한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Bueno de Mesquita, Bruce)가 저술한 정치전략서 '독재자의 핸드북(The Dictator′s Handbook)'은 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의 감춰둔 통치의 원칙을 밝혀줍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의 본질은 독재’이며, ‘정치의 원동력은 공익이 아니라 통치자의 사적인 이해관계다’라고 단언합니다.

이어서 그는 ‘권력을 잡은 통치자의 정치적인 생존은 소규모의 지지자 집단에 달려 있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 부와 명예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핸드폰 비밀번호를 감춰 잠재적 범죄 은닉자로 낙인 찍인 사람을 독립투사라 칭송하고, 급기야는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이 기막힌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자유와 인권, 견제와 균형, 공정과 합리, 보편과 타당 등을 송두리째 외면한 채 겉포장으로 위장된 흉내 낸 민주주의는 독재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바로 이 점을 경고하고 나태한 민주주의에 경종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사가 그렇듯 민주주의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결코 간과(看過)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투쟁의 산물로 획득한 민주주의는 통치자의 경사(傾斜)진 지도력에 의해 순식간에 치명적으로 훼손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는 너무 식상(食傷)해서 인용조차 하지 않는 링컨(Abraham Lincoln)의 ‘국민의, 국민에 위한, 국민을 위한 정치(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가 모처럼 살갑게 다가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국민들은 심한 좌절감 속에서 파편화된 삶을 겨우 연명(延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에게 지배 당한다”는 2,400여 년 전 플라톤(Platon)의 일갈(一喝)이 가슴을 후비는 5월, 타는 목마름으로 위기의 우리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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