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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역사 '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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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역사 '을미사변'
  • 나동주
  • 승인 2021.11.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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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前 영광교육장

을미사변은 통한의 역사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한 잔인한 야만의 역사입니다. 전쟁 상황이 아님에도 일국(一國)의 왕비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세계의 역사 어디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파렴치한 살인의 역사입니다.

소설가 신경숙은 그의 장편소설 '리진'에서 “민족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을미사변은 시해의 대상이 왕이 아니라 왕비라는 사실에서 그 치욕이 배가된다”고 탄식했습니다. 왕이 죽기 전에 왕비가 먼저 죽임 당함으로써 왕은 순식간에 한낱 허수아비로 전락했으며 더불어 왕을 보위하는 신하와 왕을 주군으로 모시고 사는 백성들 또한 위태하게 생명은 부지(扶支)하나 사실은 죽은 송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을미사변은 왕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민족 전체가 능멸 당하는 치욕의 역사였습니다.

2021년 11월 16일, 일본 아사이(朝日) 신문 보도에 의하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범인이 쓴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여러모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호리구치 구마이치(堀口 九萬一)라는 현역 일본 외교관이 부임지인 조선의 왕비 시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범인이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아울러 그는 시해 현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며 우리 민족을 철저하게 농락합니다.

“나는 담을 넘어 침소에 이르러 왕비를 죽였다. 생각보다 쉬워 어안이 벙벙했다.”

일본은 이런 나라였으며, 앞으로도 그런 나라일 것입니다. 끔찍하고 저주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찌 함부로 그들과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들을 이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방자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호시탐탐 재침탈의 명분을 축척하고 있는 그들입니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일본과 관련한 외교 현안에 대한 견해를 물었는데, 두 후보자의 상이한 인식의 차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후보자의 대일 역사관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정치사적 관점의 차이라기보다는 단지 득표의 유불리(有不利)에서 파생된 기형적 역사관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여당 대선후보 – 한미일 군사동맹에 관한 견해, 2021. 11. 10.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일본과의 군사동맹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영토나 과거사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어 영속적으로 공존관계가 되면 몰라도 제국주의 침탈 문제에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그들과의 군사동맹은 반대합니다. 과연 일본이 믿을 수 있는 우방국가입니까?”

[야당 대선후보 – 한일 관계가 악화된 원인에 대한 견해, 2021. 11. 14. 외신기자회견]

“문재인정부의 대일 외교는 실종 상태입니다. 양국 이익에 입각해 실용주의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국내 정치에 일본 문제를 너무 끌어들인 게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입니다.”

역사를 보는 눈으로써 역사관은 객관적인 정통성을 담보 받을 때만 그 가치가 인정됩니다. 지엽적(枝葉的)인 곁가지의 역사를 본줄기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역사인식으로는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합니다. 역사인식은 국가경영의 기반으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정치적 비판을 위한 수단으로써 위장된 역사인식은 오롯이 국민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흉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주도면밀한 통찰력이 결여된 역사인식은 올바른 역사관이 될 수 없으며 이는 정치 지도자로서 결정적인 흠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금에 일본은 왜곡의 역사에서 무역 보복의 역사로 그 영역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을미사변이라는 통한의 역사에서 국제무대에서 늘상 우리에게 린치(lynch)를 가하는 훼방의 역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021년 11월 22일, 일본 산케이(産經新聞) 신문 칼럼은 문재인대통령이 적극 추진 중인 종전선언을 ‘정치쇼’라고 폄하(貶下)하면서 극언에 가까운 언사까지 동원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타깃(target)으로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우리는 결코 그들의 과녁이 될 수 없습니다.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추상(秋霜)같은 기개로 당당히 응전해야 합니다.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아야 합니다.

통한의 역사, 을미사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느 때보다 위정자( 爲政者)들의 현명하고 냉철한 대일 역사인식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외마디 절명 소리가 초겨울 산야를 진동하듯 칼바람 소리 매섭습니다. 백의민족의 적삼저고리에 선혈이 낭자합니다. 다시금 허리띠를 조여매고, 신발끈을 동여매야겠습니다. 

1895년 10월 8일!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날이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바람도 숨 죽여 울었던 그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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