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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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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 나동주
  • 승인 2021.10.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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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前 영광교육장

방랑의 휘파람 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면서 시작되는 '황야의 무법자'는 오직 방아쇠를 먼저 당긴 자만이 목숨을 담보할 수 있는 피도 눈물도 없이 흉흉한 미국 서부영화입니다. 1964년에 개봉된 이 영화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는 악당들 사이에서 돈이나 뜯어내는 사기꾼 같은, 서부극의 전형적인 정의로운 방랑자가 아닌 안티 히어로(anti hero) 같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영화는 정의가 사라진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부정의(不正義)하게 살아가는 총잡이들의 건조한 삶을 습한 화면에 담았습니다. 사방에서 난사되는 총소리의 파열음은 온 산야를 피로 물들이고 자연(紫煙) 자욱한 흐릿한 화면은 경쾌한 OST(Original SoundTrack)가 무색하리만큼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들에겐 모두가 죽은 목숨이었고, 관대함이란 있을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의 시대였습니다. 죽어야만 끝나는 전쟁터였습니다.

무릇 우리의 근현대사가 이처럼 비정한 서부시대를 옮겨 놓은 것처럼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서부시대의 약육강식은 더욱 진화하여 강육약식이 되기도 하고, 강육강식이 되기도 하는 참으로 혼돈의 세상입니다. 강하고 약함을 떠나 오직 억지와 오기가 승리하고, 거짓과 배신이 득세하며 ‘아니면 말고’식의 룰(rule)이 등식으로 작동되는 그야말로 스모킹 건(smoking gun)의 화약 냄새 진동하는 황야의 무법자 시대를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용케도 민주주의를 핑계 삼는 허울이 그 시절과 다를 뿐입니다.

258명을 사형시킨 이승만정권은 조봉암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하여 사형시켰으나, 그는 2011년 대한민국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려 복권됩니다. 당시 이승만은 조봉암이 1952년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높은 득표를 기록함으로써 정치적 위기의식을 느꼈던 터라 정적(政敵)의 싹을 미리 잘라버린 대표적인 무법자적(無法者的) 살인이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박정희정권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연루된 8명의 인사들을 반공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언도하고, 판결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전무후무한 세계적 치욕의 사법 역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는 등 이 사건은 유신체제하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만이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박정희정권 당시 사형으로 불귀지객(不歸之客)이 된 사람이 총 473명이었습니다.

광주 민주시민을 총칼로 유린한 전두환정권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역주행시킨 가장 파렴치한 무법천지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인권이 그토록 처참하게 짓밟힌 삼청교육대는 그야말로 황야의 무법자들 세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법은 한낱 사치품이었으며, 오직 총과 칼로 자행되는 폭압통치는 민주주의가 언제든 허망한 허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전두환정권의 폭력화는 실정(失政)에 대한 처참한 자백이었습니다. 그들에겐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넘어 007 제임스 본드(James Bond)처럼 은연 중 우리가 모르는 살인 면허(Licence to Kill)가 주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은 아직도 무법천지의 세상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에 의해 활자화된 명시적 법률은 언제든 그들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을 달리 할 수 있으니 이들 또한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들의 주무기(主武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와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려 줄 수 없다.”였으니 이 간단한 방법을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이제까지 모르고 살아왔으니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99만원 룸살롱 접대사건, 성접대 장면을 알아보지 못한 시력 나쁜 검사, 수임료 100억 이상을 챙긴 검사 출신 변호사,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한 검사 출신 국회의원 아들 50억 수수, 고소장을 직접 써 주고 접수처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 고마운 검사 출신 국회의원, 가짜 박사 학위로 버젓이 총장자리에서 큰소리 친 철면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역한 사이비 목사, 박사학위 표절 논란에도 당당하게 자리를 유지(yuji)하는 어떤 사람, 자식에게 문제 있는 공직자는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던 그가 정작 자신 아들의 패륜적 행동에 대해서 내로남불하는 국회의원, 전두환이 정치를 잘 했다는 등 천박한 망언을 일삼는 어느 정신 나간 후보자.

모두가 황야의 무법자들입니다. 총 대신 온갖 독행(毒行)과 독설(毒舌)로 무장하고선 양심의 소리에는 아예 눈조차 꿈쩍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그들 주위에는 그들을 옹호하고 격려하며 쉴드(shield) 쳐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기막힌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이 팍팍하고, 힘겨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후광(後廣)의 말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kles)’ 같은 일촉즉발의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산다고 해도 실체적 진실의 편에서 해야 할 말과 행동은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올곧은 민주시민이지 결코,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현듯 손바닥에 ‘王’자를 써 넣고 싶은 맹랑한 생각에 속절없이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고뇌에 찬 그 남자, 로댕(Rodin)의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운 만추(晩秋)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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