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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내 수목원
  • 이기홍
  • 승인 2020.11.0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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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前 목포교육장

아시내 집을 지키는 똘이가 심하게 짖어대기에 마당으로 나가보니 호피무늬 고양이가 새끼를 물고 사랑채 부근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대문 밖으로 천천히 나갔다. 마침 지나가던 이웃집 형수가 ‘아침부터 온 마을을 저러고 다닌다’고 했다.

다음 날 텃밭을 손질하다 사랑채 구석에서 고양이가 심하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가보니 어제 어미가 물고 있었던 그 새끼 같았다. 해질 무렵 목포 아파트로 가려는데 또 새끼 고양이가 심하게 울어대기에 데려가자고 했으나 아내는 어미가 보살펴 줄 것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걱정이 되어 다음 날 혼자 목포에서 일찍 왔으나 새끼 고양이는 죽어 있었다. 창호지에 감싸 텃밭 한 켠에 묻어주었다. 

오후에 마을 입구 솔밭에 방치된 조 씨 묘역을 예초하려고 가다가 그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나를 응시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괘의치 않고 풀을 베고 있는데 묘 가장자리에 임시로 놔둔 배수관 주변에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가 우리 집 사랑채에서 죽어간 고양이와 크기도 모양도 같았다.

한 참을 바라봤다. 도저히 네 마리는 키울 수 없어서 그 중 한 마리를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퇴직해 고향집과 목포 아파트를 오가며 작은 일거리를 찾아 소일하고 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정도인데 과장해 말한다면 고향집 마을 아시내 가꾸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거처했던 집을 내가 개축해서 목포를 오가며 살고 있다. 집안 곳곳과 온 동네를 살피며 어머니가 떨쳐버리지 못했을 외로움을 지금은 내가 감수하며 하루해를 보낸다. 난 오래전부터 퇴직하면 접근하기 쉬운 오천 평정도 되는 야산을 구입해 수목원으로 가꾸는 일을 꿈꿨다. 나무를 돌보는 것이 취미에도 맞고 보람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마을을 수목원 가꾸듯 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시작한 것이 어느덧 칠 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아시내가 내 삶의 한 가운데로 다가와 있다. 직경이 이 미터도 넘게 자란 황금측백 이백 여 그루가 마을 어귀에서부터 끄트머리까지 늘어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칠백 미터도 더 되는 무궁화 꽃길이 내 눈빛을 갈망한다.

사이사이 옥향나무와 각종 화초가 어우러져, 지금은 마을이 격조를 더해가고 있다. 내친 김에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마을 가꾸기 공모사업에도 응모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매년 시행하는 마을 공동체 공모사업에도 참여했다. 삼백 오십 미터가 넘는 마을 진입로에는 삼 미터 간격으로 무궁화를 심었다. 방죽가인데도 불구하고 가뭄을 심하게 탔다.

주전자로 방죽에서 길러 그것도  숫자를 세어가며 약을 주듯 물을 줬지만 내겐 힘에 겨웠고 봄 가뭄은 너무 길었다. 그렇게 보살핀 무궁화가 지금은 꽃길이 됐다. 옥신각신하며 나무를 한창 심던 때 한번은 방죽가에서 ‘내가 죽으면 누가 나무를 가꿀 것인가?’ 하는 언쟁을 듣게 됐다. 그들은 나보다도 열 살이 넘는 연상이었다. 

동네 입구에 귀갑을 입은 노송이 백 여 그루 서있는 솔밭이 있다. 평산 신 씨 선산이라 문중에 제안해 잡목을 베어내고 잡초를 제거해 가꾸고 있다. 호피무늬 고양이 새끼를 발견한 조 씨 묘역은 평산 신 씨 선산과 경계를 이루며 아시내 솔밭을 이루고 있다. 이번에 그 곳에 ‘아시내 솔밭 가요문학관 조성’이라는 아이템으로 마을 공동체 공모사업에 응모했는데 낙방하고 말았다.

영암아리랑에 나오는 보름달 같은 게시판을 만들어 아시내 노인들의 애창곡 가사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골라 크게 붙이고 추억어린 빛바랜 사진을 확대해 게시할 요량이었다. 못내 아쉬웠다. 지금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마을가꾸기 사업이 확정돼 실시 설계에 들어가 있다. 안길이 다듬어 지고, 담장이 개량되고, 골목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퇴직 후 꿈이 아시내 수목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내 수목원엔 있을 수 없었던 돌담장 돌아가는 골목, 전설이 열린 고목, 추억을 길러 올릴 수 있는 우물이 함께 하니 풍성한 수목원이 되고 있다. 독거노인들의 집에 방치된 나무와 마을 곳곳에 서서 풍광을 더해주는 당산나무 또한 아시내 수목원의 일원이 되었고, 어느 사이 그들을 돌보는 것은 내 몫이 됐다. 

내 고향 아시내는 조부모님 대부터 살아온 꿈엔들 잊힐리야의 땅이지만 지금은 쇄락해 칠팔십 대 삼십 여 명만이 살고 있다. 우리 집 역시 팔 남매가 살았지만 나 외에는 전부 고향을 등졌다. 선산이 있는 고향을 누군가는 지켜야 하겠기에 계속 관리를 해오다 퇴직해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아시내는 저물어가지만, 영암아리랑의 산실이다.

이절에 ‘서호강 몽해들에 풍년이 온다’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서호강은 마을 앞에 흐르는 강이고, 몽해들은 내 집 앞 들판 이름이다. 작사자 백암이 아시내에서 나고 자랐다. 작년에 마을 공동체 공모사업에 선정돼 오백만원을 지원 받았다. 사업을 끝내고 솔밭에 플래카드를 이렇게 내걸었다. 

‘영암아리랑이 탄생한 이 곳 아시내에 골목미술관이 꾸며졌나이다. 눈길 머물고 발길 닿는 곳에서 아리랑의 정취를 느끼시면서, 인류를 감동시킨 세기의 명화 24점과 경건한 마음으로 마주하시옵길 청하나이다. 저물면서 더욱 빛나는 아시내 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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