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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운
  • 승인 2016.11.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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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운∥목포삼학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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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중요한 본성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높이 오르고 싶어 한다. 나무에 오르고, 산에 오르고 가시적인 것 뿐만 아니라 팀장으로 오르고, 과장으로 오르는 것까지 모두 말이다. 이처럼 오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사람이 고안한 도구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사다리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도구가 아닐까?

우리 집에는 사다리가 하나 있었다. 집 뒤뜰에 300평 남짓 되는 대밭이 있던 관계로 굵은 왕대에 가로목을 대고 줄로 묶어서 만든 사다리였는데 아주 가벼웠다. 이 사다리가 가장 요긴하게 쓰일 때는 지붕을 이을때였다. 가을 걷이가 끝나면 볏짚을 잘 말려서 마당에 쌓아 두고 겨울 내내 마람을 엮었다. 지붕을 모두 덮을 수 있을 만큼 마람이 엮어지면 지붕을 이었는데 이때가 보통 이른 봄 학년말 방학쯤이 됐다.

이른 봄은 농한기이기도 하려니와 날씨가 좀 풀려서 따뜻하기 때문에 지붕을 이는 일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날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위에서 아래 내려다 보이는 이웃집들의 모습과 마당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동네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사다리에 오르면서 느끼는 휘청거림에 온 몸이 찌릿하면서 혹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또 다시 사다리를 오르게 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땅에서 늘 보아왔던 것과 형태는 같으면서도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변화가 좋았다. 나는 언제나 오르는데는 자신이 있었다. 나무 오르기, 산 오르기, 남의 담장을 올라서 뛰어 넘기 등. 사다리 역시 잘 오르지만 두려운 건 바로 내려올때였다. 올라갈 때는 몸의 중심이 잘 잡혀 쉬운데 내려올 때는 사다리가 등뒤쪽으로 나뒹굴어질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몸을 사다리에 찰싹 붙이고 손과 팔에 힘을 잔뜩 주고 한 쪽 발을 살며시 내려 발 끝에 다음 사다리 가로목이 닿는지 확인한 후,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지막 발끝이 땅에 닿으면 그때야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여 내려온 후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또 오르고 싶어졌으니 그게 나만의 본성일까? 이제 사다리 타고 올라갈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생활속에서 사다리를 잊어 가고 있는데 가끔 산에 오르다 보면 사다리를 볼 기회가 더러 있다.

험하고 가파른 산에는 등산 하기에 편하도록 또는 덜 위험하도록 사다리를 설치해 놓은 곳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험한 곳이면 못오르게 했으면 되련만, 사다리까지 만들어서 올라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높은 곳이다 하면 무조건 오르려는 사람들의 심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정직한 걸음걸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이 무던히도 고생스러운 고행을, 그 누가 바보스러운 짓이라고 비웃을 수 있으랴.

높이 오르는 것은 멀리 보려는 것이고, 멀리 보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라면 높이 오른 것 역시 중요하지만 높이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진리를 누구나 한번쯤은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임용운 교장이 지난 7월 발행한 저서 '스승의 향기'(정우출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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