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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누레바'는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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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누레바'는 되지 말자
  • 김장용
  • 승인 2016.08.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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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용∥학교바로세우기 전국연합 전남회장. 前전남교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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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늙은 것은 모든 노인들이 바라는 이상이다. 하지만 노인 4고(苦)라는 말이 있듯이 노인들 에겐 십중팔구 늘그막에 바라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 고(孤獨苦), 무위고( 無爲苦)가 그것인데 만일 이중에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축복(祝福)받은 노인이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노년이 되면 모든 욕심의 유혹부터 뿌리 처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말 속에는 노욕(老慾)은 곧 노추(老醜)와 직결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어 여기에 노욕(老慾) 이란 불청객이 5고(苦)로 하나 더 추가된다.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존 맥아더 목사는 노인들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단지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 늙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나이 들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말년에 꿈마저 버린 사람은 대신 마음의 주름살이 생길 것이기에 노인 세대는 ‘지금도 할 수 있다’는 꿈까지 버려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때문에 남은 인생 여정을 살아갈 우리 노인들도 국가나 사회가 주변에서 무엇을 해주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노인들에게 엄숙한 충고를 던진다면 어떤 일을 해보기도 전에 체념부터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안 돼’, ‘나는 이제 쓸모없는 늙은이야’ 따위의 푸념은 자신을 스스로 매장하는 짓이다. 우리 옛 조상들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노인들의 경륜을 지혜로 받아들였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보면 걸언례(乞言禮)라는 제도를 시행했던 내용이 나온다. 고을안의 80세 이상 노인들을 국가기관에 초대해 윗자리에 모시고 잔치를 베풀고 노인들의 입을 통해 백성들이 당하는 괴로움이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해 좋은 의견이나 지적이 나오면 시정할 방법을 전해 들었다.

80넘은 노인들은 두려움이나 이해타산 없이 거침없이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됐던 제도인 것 같은데 현재는 노인들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부담만 주는 귀찮은 존재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픔이 밀려온다. 일본의 주부들은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집안에 죽치고 들어앉은 늙은 남편을 ‘오치누레바(濡れた落ち葉)’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젖은 낙엽’이라는 뜻이다.

마른 낙엽은 산들 바람에도 잘 날아가지만 젖은 낙엽은 한번 눌어붙으면 빗자루로 쓸어도 땅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오치누레바’라는 말은 집안에서 정년퇴직후의 늙은 남편을 부인이 밖으로 쓸어내고 싶어도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부담스런 존재라는 뜻이지만, 당사자인 우리 노인들에게는 심히 모욕적인 표현이다.

노령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젖은 낙엽’신세의 노인들은 앞으로도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노인들도 계속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독일이 낳은  위대한 문호 괴테는 74세 때 19세 소녀인 울리께와 뜨거운 사랑을 나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일본의 100세 시인 할머니 ‘시바다 도요’는 92세 때 아들의 권유로 시(詩) 쓰기를 시작해서 99세에 기념비적인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을 발간해 150만부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살아 있어 좋았어, 살아 있기만 해도 좋은 것이니 약해지지 마’라는 내용의 시바다 도요의 시는 노인들의 삶에 큰 용기를 주고 있다. 그러니 노인들이여, 늙었다고 절대 기죽지 말고 체념하지도 말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꿈까지 잃게 되면 ‘젖은 낙엽’ 신세로 전락해 외롭고 긴 인생 여정의 막다른 길로 내몰리게 된다. 인생의 빛깔은 아침보다 황혼이 더욱 찬란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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