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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흙수저에게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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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흙수저에게 희망이 있다
  • 박찬주
  • 승인 2016.02.0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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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곡성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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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빛의 속도로 통신을 붙여준 게 인터넷 혁명이다. 지구 반대편 산골마을에서 한 마디 외침이 인터넷을 타고 날아들면 73억 인구가 순식간에 반응한다. 헬조선,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작년 한 해 청년세대를 주축으로 SNS에서 상당기간 검색순위 1위를 기록했던 키워드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며 그 의미는 계속 진화했다.

'세계의 문학' 작년 겨울 호에 실린 글을 보면 지옥과도 같은 한국을 지칭할 때는 ‘헬-조선’의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점차 한국은 그야말로 지옥이라는 ‘헬=조선’으로 어느새 둔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제도, 세월호와 메르스 같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앞뒤가 꽉꽉 막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포괄하는 단어가 헬조선이라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TV뉴스 자막에 나왔던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진짜 그게 맞나 싶다. ‘한국 청소년 삶의 만족도 OECD 중 꼴찌, 등록금 부담률 OECD 최고수준, 한국 아동들 학업스트레스 세계 최고, 공교육비 민간 부담 OECD 3배’ 등 수없이 부정적인 내용들로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 속에는 지금 한창 치킨 게임에 열을 올리는 ‘국회의원 경쟁력 OECD 꼴찌수준 연봉은 3위’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신조어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대변한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린 ‘88만원 세대’로부터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3포 세대’,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하는 ‘5포 세대’,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7포 세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어떤 것도 모두 다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의 청년들에게 헬조선은 이제 수저계급론으로 이어졌다.

자기 재산을 파악하는 사이에 또 불어나 얼마인지도 모르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금수저에 빗대 기댈 언덕도 없는 청년을 일컫는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맛깔스럽게 유행한다. 그래서 부와 권력의 세습으로부터 소외받고 항상 노력이 아닌 노오~력이 부족해서라고 조롱받는 흙수저들은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원죄인가? 또, 누리과정은 누구나 함께 누려야 할 보편적 복지임에도 흙수저에게만 특별히 베풀어 주는 은총(?)이기에 목매어 기다려야 하는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수한 교수가 ‘신음서제도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분노나 박탈감이 자조와 조롱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라고 했던 말이 가까이 와 닿는다. 몇 해 전 큰 아들에게 사법고시에 도전해보라고 했더니 요즈음은 음서제가 더 위력을 발휘해서 합격한들 크게 기대할 것 없다던 대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나오는 용’은 흙수저들에게는 영원히 다가설 수 없는 신기루일까? 얼마 전 중국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유학시키는 학부모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해진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고 과하다 싶을 만큼 가정학습 과제를 부여해도 학부모가 반드시 확인해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규칙을 어기거나 과제를 해결해 오지 않으면 학부모를 호출하여 강하게 책임을 묻지만 선생님의 권위를 절대 존중한다고 했다.

물론 사교육 시설도 없지만 학교와 선생님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필요 없는 중국, 예일대학교 에이미 추아(중국계) 교수가 '타이거 마더'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인들은 아이가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며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술과 일하는 습관과 자긍심으로 무장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최선책’이라고 믿는 중국,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과 오버랩 되어 10년 후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교할 때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 가슴 답답함이 밀려온다.

산속을 헤매다 짙은 어둠 속에 묻히거든 허둥대지 말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방향 감각을 찾아야 한다. 절망이 한계에 이르면 희망이 다고오고 있다는 징표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흙수저들에게 손에 잡힐 듯 한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일 것이다. 가장 확실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상황을 냉철하게 성찰해보고 가진 자들이 조롱하듯 내뱉는 말처럼 노력이 아닌 노오~력만이 소외와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는 해결책이다.

나는 며칠 전 군수와 함께 폐교 직전에서 14대 1의 입학 경쟁률을 자랑하는 군산의 면단위 중학교와 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자체가 교육을 지원하면 패널티를 주겠다는 이 정부의 현명한(?) 방침에도 군수의 교육 나들이에 힘차게 부딪쳐주는 범민들의 손바닥 소리에서 물려받을 것 없는 논두렁 흙수저들이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본 내용은 2월 2일자 광주일보에 기고한 원고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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