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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밭 가꾸기
  • 정병도
  • 승인 2015.08.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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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도∥관기초등학교 교장
정병도 칼럼.jpg

플라타너스에서 그네를 타던 바람이 이내 축구골망을 흔들며 놀고 있다.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운동장에 바람도 심심한가 보다. 사실은 내가 바람과 같은 마음이다. 짧은 방학인데도 며칠간 아이들이 없으니 학교가 재미가 없다.
 
실내화를 잃어버려 찾아달라고 학교외벽에 ‘실내화 차자조’라고 낙서를 하던 준서, 고자질보다는 사탕이 욕심나서 시도 때도 없이 교장실을 방문하는 지혜, 넓은 운동장을 두고 한사코 뒤편을 쏘다니는 귀여운 악당 4인방, 공부시간을 없애고 공을 차게 해달라고 건의하는 용감한 키큰 녀석들, 갑자기 동시를 썼다고 들고 오는 ‘꼬마 시인’들, 비온 뒤 운동장에 고인 웅덩이가 수영장 같은데 “나뭇잎이 고기떼로 논다”고 표현한 진산이….

 무심히 교장실에 걸린 아이들의 사진을 바라볼 뿐이다. 아이들이 내 방을 자주 들락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교장실 문을 항상 열어놓겠다고 약속을 했다. 교장이자 모교 출신의 선배로서 무료 고민 상담도 자처했다. 물론 ‘비밀 보장’ 엄수다. 또 한 가지는 동시로 나누는 대화 때문이다.
 
학교 부임 이후 인성주회나 다양한 행사가 있을 때면 하고 싶은 말을 동시로 지어 화면에 제시하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곤 기회만 있으면 글을 읽고 쓰도록 하였다. 꽃피는 4월에는 전교생 모두에게 숙제를 주었다. 이 좋은 봄날에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짧은 글로 적어보자고. 그렇게 전교생의 작품을 다듬어서 학교 뒤편 연못가에 ‘시 향기 뜨락’ 동시화 갤러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아무 때고 쓴 작품을 놓고 가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가끔씩 책상위에 놓여있는 명작을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꽃들이/ 한들한들 춤추고 있어도// 난,/ 뽑아야 한다.//
오늘은/ 들꽃책을 만들어야 한다.// 뚝!/ 뽑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들꽃책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꽃을 뽑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맘 고운 민서.
 
들꽃들이 살랑살랑/ 고개 흔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이야길까?//
귀로는 못 듣지만/ 마음으로 듣는다./ 이름 모를 꽃/ 
 
들꽃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청진기를 가진 태규.
 
저 하늘 별님이/ 푸른 들판에 누워 있다.//
깜깜한 밤이 지나고/ 해님이 내려다보아도//
이름 모를 들꽃이 되어/ 풀잎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다.//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별님이 들판에 누웠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망원경을 가진 예은.
 
교내 ‘에코숲 가꾸기 행사’에서 들꽃과 자연과 나눈 이야기들을 여리고 예쁜 마음으로 쓴, 우리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풋풋한 작품들이다. 이제 곧 개학이다. 2학기 개학을 하면 방학 숙제로 내 준 아이들의 여름 작품이 기다려진다. 감자를 캘 때처럼 ‘관터골 밭두렁’ 텃밭에 김장배추를 심고 가꾸면서 배추속 같은 알차고 싱싱한 작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요즘 인성교육이 화두다. 어디 갑자기 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명약이 있겠는가. 우리 아이들 마음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자주 속을 들여다보고 관심 가져줄 일이다. 좋은 노래 함께 부르고,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마음밭을 가꾸는 일, 오래도록 모두 함께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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