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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와 체력전 그리고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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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와 체력전 그리고 바둑
  • 송길화
  • 승인 2014.07.2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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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화∥학교바로세우기광주연합 회장·前 광주교총 회장

지금으로부터 13년전인 2001년 네델란드(The Netherlands) 출신 거스 히딩크(Guus Hiddink)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팀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월드컵 4강(强)에 올려놓음으로써 세계적 명장(名將)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한국을 떠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한국인들의 가슴에 위대한 감독으로 남아 있다.

그가 위대한 감독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한국팀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아서만은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Paradigm)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처음 부임해왔을 때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우리 선수들이 뛰기는 잘 뛰는데 기술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좀 떨어지니 기술을 잘 좀 가르쳐주시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히딩크의 대답은 축구협회 관계자들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내가 보기에 한국 선수들은 기술면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다. 오히려 양쪽 발을 다 사용하는 등 더 뛰어난 점도 있다. 문제는 체력(體力)이다.” 그 때부터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히딩크는 자신의 전술을 따라줄 선수들을 직접 선발했다. 과거의 명성은 필요없었다. 송종국, 이천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차두리, 김남일 등 새로운 얼굴들이 속속 합류했다.

반면 홍명보, 안정환, 유상철, 김병지, 황선홍 등 쟁쟁한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체력이 달린다는 이유에서였다. 히딩크의 결정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불안해했고, 팬들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이후 대표팀은 평가전에서 번번히 졌고, 히딩크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히딩크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왕복 달리기만 반복시켰다.

어렵게 기회를 잡은 젊은 선수들은 탈락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었다. 히딩크의 훈련방식에 불만이 있었던 고참 선수들도 나중에 합류해 고된 체력 훈련을 묵묵히 따랐다. 시간이 흐르자 차츰 성과가 나타났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는 이같은 혹독한 체력훈련을 통해 완성됐다. 강한 체력을 앞세운 한국식 압박 축구 앞에서 외국 선수들은 당황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의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이 박지성 선수를 영입한 이유는 박지성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높이 평가해서였다.

축구와 달리 바둑은 본질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게임이다. 지고 나면 “에이, 다 이긴 건데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해서”라고 하는데, 원래 바둑은 실수에 의해서 승부가 갈리는 게임이다. 가능한 한 실수를 적게, 그리고 작게 해야 이길 수 있다.

이창호 9단이 세계 최강자인 이유는 그가 실수를 적게 하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창호 기사는 ‘아무나 둘 수 없는 화려한 수’가 아니라 ‘아무나 둘 수 있는 평범한 수’로 이긴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진리(眞理)가 쉽고도 평범한 곳에 있다는 것을 그는 바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의 바둑은 100점짜리와 50점짜리를 오가지 않는다. 꾸준히 80점짜리로 둔다. 그래서 그는 ‘세계 1인자’가 되었다. 바둑계의 격언(格言)에 ‘묘수(妙手) 세 번이면 필패(必敗)’라는 말이 있다. 얼마나 판세가 궁했으면 묘수를 생각했겠느냐는 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치 9단으로 불린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정치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YS는 “첫째는 무슨 좋은 수를 내려고 하지 말고, 둘째는 상대의 실수를 용납하지 마라”고 대답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의 실수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혹여 알았다 하더라도 심판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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