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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덕근
  • 승인 2014.07.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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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근∥강진교육장·전남교총회장·교육학박사

음력 정월 보름날 아침, 식사 전에 마시는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귀밝이술은 예로부터 차게 마시는 전통이 있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나누어 마시면 한 해 동안 귀가 밝고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풍습에서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새로운 한해를 출발하기 전, 시작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그 계획을 잘 추진하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는 이 풍습은 농사에 필요한 정보들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더 잘 듣기 위해 생겨났다는 풍문에서 유래되었다. 귀밝이술을 마실 때 어른들은 “귀 밝아라, 눈 밝아라.”라는 덕담을 하고, 평소에는 함께 술자리하기 어려웠던 부자지간에도 귀밝이술을 함께 마셨다.

어느 지방에서 남자들은 정월 대보름날 귀밝이술을 자신의 집에서 마시지 않고 남의 집에 가서 마셨는데 남의 집의 귀밝이술을 얻어 마시면 귀가 빨리 열려 남의 얘기를 잘 듣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자 어른부터 남자 아이, 여자 어른 그리고 여자 아이까지 모두가 함께 나눔은 결국 남의 이야기를 잘 듣자는 의미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귀는 없고 입만 있는 세상에 익숙해져 사는 것 같다. 커피숍에서 우연히 눈길을 사로잡은 분명히 연인 사이일 것 같은 사람들이 대화는 멀리한 채 눈은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손은 그 위를 부산히 움직인다. 서로 마주하고 앉아는 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응답이 올 때까지 혹은 로딩 시간을 기다리다가 가끔씩 상대를 쳐다보며 말을 하는 입은 그저 목적 없이 허공을 맴도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풍경은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을 초래하게 한다. 그래서 둘 사이는 가까운 知音에서 먼 他人으로의 길을 걷게 만들기도 한다. 입만 있는 세상도, 듣고 싶은 귀만 가지고 있는 세상도 분명 우리가 원했던 바는 아닐 텐데 말이다.

우리 귀는 같은 말을 한 곳에서 같이 함께 들어도 서로 다르게 듣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신 줄을 놓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 아마도 마음과 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일 게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없고, 마음이 가는 것에 몸이 없는 정신 상태를 일컬음이다.

사람을 많이 상대한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딱 보면 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얼굴을 보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그래서 觀相의 순서는 耳目口鼻의 순서다. 더 나아가 귀를 입보다 앞세우는 왕은 ‘聖君’이라 하지 않던가! 선생님도 아이들을 대할 때 바른 자세를 갖추어 눈, 귀, 입, 즉 몸이 학생을 정면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바른 자세에서 바른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교육 현장도 마음과 몸을 함께 쓰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연은 抗命이나 경쟁을 모른다. 사랑이 가면 사랑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잘 난 사람을 받들게 되니까 서로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간 중심이라든가 이분법적인 사고나 행위가 철저하게 부정되어져야 한다.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에는 神像이 없다고 한다. 이는 무어라 말을 하기 보다는 들음을 강조한 것이다. 들음은 상대방의 생각을 소중히 하여 그 사람과 생각을 나누려고 하는 인류 최고의 지혜인 것이다. 배운 사람은 그 배운 지식을 남에게 자랑으로 삼을 게 아니라 나눠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남에게 군림하는 도구로 삼고 있으니 참으로 병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나눔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깝고도 먼 낱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곁엔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있지만, 우리는 자주 그들을 외면하곤 한다. ​남에게 내가 가진 것을 건네는 행동이 나눔이다. 그래서 '나눔'에도 교육이 필요하다. 나눔과 배려는 사회통합의 가장 큰 가치이며, 글로벌 시대의 핵심 역량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한결같은 진리에 그 뿌리를 두지 않는 한 모든 것들이 포장된 쓰레기일 뿐이다. 대개들 흔한 건 귀하지 않고 흔하지 않는 건 귀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중한 것이고 좀처럼 구할 수 없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금보다 쌀이 흔하고 쌀보다 물이 흔하고 물보다 공기가 더 흔하듯이 말이다.

세상은 만사에 예리하기를 바라고 또 그런 사람을 칭찬한다. 그러나 예리한 것들은 뭔가를 가르고 쪼개고 파괴하는 일에 쓰이어진다. 뭔가를 갈라놓으니까 내 편 네 편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를 ‘High Touch, High Concept’의 시대라 한다.

이는 인간관계 능력과 창의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능력과 창의성은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나눔의 시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녀들의 생각을 들어주는 부모,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선생님, 교직원의 심정을 헤아리는 학교장!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영수야! 학교 빨리 가자.’라는 낱말이, ‘아, 우리 선생님이 기다리신다. 어서 가자.’라는 단어가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가는 마음! 이런 마음이 나눔이 아닐까? 입의 시대에서 귀의 시대로 가는 것이 ‘나눔’의 시작은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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