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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통] "나, 대수씨의 정체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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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통] "나, 대수씨의 정체를 알려드립니다"
  • 김두헌 기자
  • 승인 2014.04.29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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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교감에서 교육장으로 전격 발탁
개국공신론, 특정교원단체 출신론 등 억측 난무

안녕하십니까? 김두헌 기잡니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참혹한 시기에 이런 기사를 쓰는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지난 3월 1일자 인사에서 나대수 영암교육장(사진)이 발탁된 사유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는 것이 저의 도리일 것 같아 창졸(倉卒)간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사실 나대수 신임 영암교육장은 지역교육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전문직 경험도 장흥교육지원과장 1년이 전부이고 교장 경력도 공립 대안학교인 한울고 교장 1년이 고작입니다. 그런 나 교육장이 영암교육장으로 전격 발탁되자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개국공신론, 배후 세력론, 특정 교원단체 출신론 등 온갖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무엇보다 교감에서부터 교육장까지 6년만에 초고속으로 승진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그래서 제가 직접 지난 23일, 불시에 영암을 직접 방문해 독자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대신해 물어봤습니다.

“열심히 진학 지도해 전념해 명문고 만들기에 앞장섰고, 상향식 의사결정으로 조직문화를 탄력적으로 운용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사실 나 교육장께서는 교사시절 서부권에서만 근무했다고 합니다. 하의종고, 낭주고, 비금고, 목포고, 목포제일여고 등 주로 서부권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했고 교감으로 승진해 처음으로 동부권인 백운고로 부임했다고 합니다.

“당시 백운고는 커트라인이 없는 일반계고로 진학실적이 형편없었다. 3월 1일자로 부임하자 마자 중학교를 직접 방문해 학부모들에게 ‘체제를 바꿔 사립고등학교 못지 않게 공부를 시키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다행히 진학지도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계신 3학년 담임들과 힘을 합해 부임 첫해 서울대에 2명을 합격시켰다”

당시 나 교감은 이후에도 담임교사들과 협의를 통해 수능이 끝나자 마자 2학년들을 수능체제로 전환시키는 등 획기적인 체제혁신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학교분위기가 일신돼 커트라인이란게 없던 학교가 신입생들의 성적이 내신 60%에서 4년이 지나자 40%로 껑충 뛰었고 해마다 서울대 진학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하네요.

나 교육장은 백운고에서 4년동안 교감으로 근무하다 공립대안 학교인 한울고 초대교장으로 부임합니다. 사실, 공립대안학교라는 타이틀은 좋았지만 어느 누구하나 근무하겠다고 선뜻 나선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나 교장은 교장으로 부임해 1년 24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동거동락 했습니다.

“당시 한울고에는 교사들이 20명 근무했는데 교장이 20명이라는 자세로 현안에 대해 직접 결정짓고 책임까지 지도록 했다. 저는 계획이 수립되면 추임을 넣는 역할을 했다“

나 교육장은 “한울고에 부임하면서 절대 남에게 먼저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 교사들과 단 한차례의 의견 충돌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또한 나 교육장은 장흥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시절에도 연구를 많이 한 실무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등 전권을 위임했다고 합니다. 

그는 “요순시대처럼 임금이 있나 없나도 모르는 시절이 좋은 시대”라면서 “교육장에 부임해서도 양 과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저는 방향만 잡아가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습니다. 나 교육장은  “혼자 가지 않고 항상 함께 가려고 했다”면서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아집과 고집이 세진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제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귀뜸했습니다.

내 맘을 낮춰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모두가 편해진다는 것이죠. 그는 이어 “젊은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는데 야전경험이 많은 만큼 현장감을 살리는 정책을 펼쳐나가겠다”면서 “학력 향상만이 아닌 학생 각자의 꿈에 맞는 실력을 키우는데 행정력을 집중시켜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나 교육장은 배후 세력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동생이 법조계에 있긴 하지만 부장검사나 부장판사 출신이 아니라 고시 합격후 지금까지 변호사로만 활동하고 있다”고 일축했습니다. 변호사인 동생이나 나 교육장 개인도 인사권자와 학연, 혈연, 지연에서도 아무런 연고가 없었습니다.

또 특정 교원단체에서 활동하지 않았느냐고 기자가 묻자 “90년 당시 의분에 차 활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않느냐”면서 “후배 교사의 요청에 의해 잠시 잠깐 활동은 했지만 조합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개국공신론에 대해서도 나 교육장께서는 “백운고 교감 시절, 학부모들이 좋은 평가를 내려주셔서 그런 이야기가 (인사권자에게) 흘러들어 갔는지는 모르지만 생면부지의 동부권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런 깜냥도 못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나 교육장을 처음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외향적이진 않지만 따뜻한 인간미를 갖고 있었고 진학지도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전문가, 누구 앞에 서길 좋아 하진 않지만 소리없이 강한 사람, 현장 실무자들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배려와 섬김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 교육장처럼 열심히 근무하는 교직자들이 전남도내에 어디 한 두분만 있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렇다면 누가 나 교육장을 인사권자에게 천거했을까’하는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밀만큼은 나 교육장님과 인사권자, 두분만의 비밀로 남겨두기로 하죠. 이제 좀, 나 교육장님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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