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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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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 김한호
  • 승인 2009.01.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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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장성여중 교감

내가 아끼던 꽃나무 한 그루가 죽었다. 매일같이 보살피고 정성을 다해 가꾸던 꽃나무였다.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잎이 떨어지더니 가지마저 말라 죽고 말았다. 꽃나무도 살아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죽으니 추하다.

나는 오래 전부터 꽃나무를 가꾸어왔다. 야생화를 가꾸기도 했고, 수백 분의 국화를 재배한 적도 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난을 비롯하여 다양한 화초를 취미삼아 가꾸고 있다.나는 조용한 시간이면 책읽기를 좋아하고, 여가가 생기면 꽃가꾸기를 좋아한다. 꽃을 가까이 하다 보니 그들과 벗이 되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나는 꽃들도 마음이 있을 거라고 믿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한다. 자기의 취향과 특기를 살려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취미생활이 다양한 만큼 더러는 자연을 훼손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인디언들은 취미로 사냥이나 낚시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즐기기 위해 살생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꽃을 가꾸는 것은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는 일이다. 또한 꽃을 가꾸는 마음은 소유하는 마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명체를 돌보는 일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길러 사회에 내보내듯이, 꽃을 가꾸는 일은 정성을 다해 꽃을 피워 다른 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정서를 나눠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년 봄이 되면, 꽃나무를 번식시켜 친지나 이웃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럴 때마다 꽃나무를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은 행복해지고 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꽃을 가꾸면서 작은 것일지라도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삶이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들에 핀 풀꽃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록빛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고,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그리워한다. 또한 자연에서 들리는 새소리, 풀벌레소리, 시냇물소리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어릴 때 나는 포플러 잎새들이 시냇물소리에 따라 춤을 춘다고 생각했다. 시냇가 가장자리에 숲을 이룬 포플러나무 이파리가 눈부신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이, 마치 이파리들이 춤을 추는 듯이 보였다. 그럴 때면, 벌과 나비들도 풀꽃 위로 날아와 춤을 추었다.

자연 속에 사는 동식물은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과학자들은 식물도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식물도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싫어하는 식물에게 타감작용을 한다. 그리고 식물들도 조건이 나빠지면 신경 쇠약이나 병적인 반응을 보여 꽃을 피우지 않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들의 사고방식으로 식물의 생태를 파악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동식물은 자연의 질서에 따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간다. 원래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초야에 묻혀 풍류를 즐기며 무위자연의 삶을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살생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길을 걸어갈 때도 작은 벌레들이 발에 밟혀 죽지 않도록 짚신을 신고 다녔으며, 지팡이로 땅을 두드려 미리 피하도록 알려주었다. 씨앗을 심을 때도 반드시 세 알을 심어 하나는 사람이 먹고, 다른 하나는 새나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하나는 자연(썩음)과 나눠가졌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풀잎 하나, 한 마리의 벌레가 도서실에 있는 책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연은 말없는 스승과 같다. 자연은 그 자체가 속임이 없고 꾸밈이 없는 선이며 오묘한 예술이다. 그러기에 동서고금의 성현들은 자연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며, 자연을 물욕의 대상으로 여겨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고 많은 동식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복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반드시 재앙이 뒤따른다.모든 생명체를 가진 삼라만상은 태어나서 결국 죽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생태계의 파괴로 동식물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소중한 까닭은 생명은 유한하며, 모든 생명체는 그들 나름대로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살아 있는 것들이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 의미를 지닐 때,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속엔 자연을 가꾸고,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우거진 숲과 지저귀는 새,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사람들 마음마다 사랑이 깃들어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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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필은 광주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제1회 ‘올해의 작품상’에 수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한호 교감의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색과 성찰을 통한 유려한 문체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장성여자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한호 씨는 광양 출신으로 문학박사를 학위를 가진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로 현재 광주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남문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또한 그는 중견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여 전남문학상, 공무원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슬픈 시인의 노래', '춤추는 꽃', '백조 문학의 이해', '행복한 삶을 위하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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