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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교장, 어떤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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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교장, 어떤 교장
  • 이기홍
  • 승인 2009.09.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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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전라남도교육청 교육정보화과 과장

교장 모임에 나가면 작은 학교 교장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다. 반면 큰 학교 교장은 대교장이란 동료들의 농을 들으며 싫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작은 학교 교장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힘이 빠져 모임에 잘 나가지 않게 된다는 어느 교장의 하소연을 듣기도 한다.

작은 학교 교장이나 큰 학교 교장이나 급료는 변함없고, 직위는 마찬가지인데 왜 그럴까. 학교가 크면 학생들이 많고 학생들이 많으면 많은 제자를 둘 수 있어서 그것이 힘이 되어 그러는 것일까. 군사를 많이 거느린 장군처럼, 사원을 많이 거느린 사장처럼 그렇게 느껴져 그러는 것일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규모가 느껴지는 학교의 교장을 대교장이라 부른다. 대교장이란 본디 위대한 교장이라는 뜻일 것이다. 교육과정과 상씨름이 붙었을 때, 뒤집기 한판으로 속 시원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경영능력 만점인 교장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존재 속에 부재하고 부재 속에 존재하는 선문답 같은 존재로서의 교장을 대교장이라 부르는 것일 것이다.

서 있어야 하는데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앉아 있어야 하는 데 서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교장이 소위 대교장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30학급 이상 규모 학교의 교장을 대교장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 식이라면 중교장이 있어야하고 소교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교장을 말할 때 어디 교장 인가를 밝히곤 한다. 그러나 어떤 교장인가는 묻지 않는다. 어떤 교장으로 퇴직했는가는 알아보려 하지 않고, 어디 교장으로 퇴직했는가를 중요시 한다.

큰 학교 교장이면 명예롭고, 도시 학교 교장이면 더욱 명예롭고, 소위 일 급지 학교 교장이면 더더욱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이 세태다. 잘못됐다고 탓하기 보다는 일반사회에서 통용되기 때문에 교직사회에서도 그리되는 것을 뭐라 하겠는가. 나는 중간 규모 학교의 교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출장 시간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떠나온 학교가 무척 그립다.

심어놓은 황금측백이 잘 자라는지, 등나무 그늘은 더 서늘해지는지, 학교도서관에 아이들이 넘쳐나 집현전이 되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운동장가의 키 큰 히말리아시다를 놓고 중간을 잘라내야 한다느니, 그대로 놔둬야 한다느니, 의견이 분분했을 때, 결국은 수형을 유지하면서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가지를 솎아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어디 학교 교장이었는지는 분명한데, 내가 어떤 교장이었는지는 점점 엷어져 간다.

그는 나이 들어 전문직에 들어왔고, 늦게 승진하여 교감이 됐다. 그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눈여겨 본 누군가의 도움으로 교장 자격을 받았고, 기다림 없이 운 좋게 교감 자리에서 초빙제 학교 교장이 됐다. 본교 학생 수 22명과 사회복지시설에 기거하는 지체부자유아 19명 학교의 교장이 된 것이다. 너무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 알리지 않고 그가 몸담은 학교를 찾았다.

아담한 학교는 적막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운동장은 잘 정돈 되어 정갈하기까지 했다. 학교의 구석구석은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운동장에서 교사로 오르는 계단에 타일 모자이크를 해 놓았는데 인상적이었다. 서쪽 담벼락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는 교장실에서 나를 맞았다. 열심히 컴퓨터를 들여다보다 생각지도 않은 나의 방문에 놀라 눈이 커졌다. 그는 초빙 교장이라 그 학교에서 4년 동안 근무해야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 감사한다고 했다. 교감일 때는 몰랐는데 할일이 많이 보인다고도 했다. 앞으로 더욱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야겠다고도 했다. 그런 후 그는 지나가는 말로 내게 말했다.

교장은 한 학교에서 최소 3년은 근무해야 교육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어디 교장이냐고 묻기보다는 어떤 교장이이냐고 묻는 풍조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늘이 마냥 높아지는 오늘, 열심히 살아온 어떤 교장이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소규모학교는 있더라도 소규모교육은 없어져야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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