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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함정
  • 안용호
  • 승인 2009.10.0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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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장 장학관

하루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너는 자취를 하여 영양이 부족하니 마아가린을 사서 먹으라’고 하셨다. 마아가린은 버터 대용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았는데 곧 심장질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인기가 시들었다. 마아가린처럼 어떤 음식이 건강에 좋은가에 대한 이론은 거의 10년을 주기로 바뀌어 왔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원인 혼란’이라는 인지함정과 관계가 있다. 식품영양학자들이 식품이 인체에 미치는 작동원리를 전체 시스템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특정한 영양소에 집중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지함정에 빠져 실책을 저질러 개인이나 국가가 위기에 처한 경우가 역사에도 아주 많았다.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였다. 그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말을 했고, ‘전기가 9,999번 안 들어왔다고 해서 전기 실험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는 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그를 ‘발명왕’, ‘천재’, ‘노력’, ‘‘하면 된다’는 미국정신의 표상’으로는 알고 있지만, 위대한 전기를 발명하고도 그의 실책으로 부와 영광의 무대를 그의 조수인 니콜라 테슬라에게 넘겨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82년 에디슨은 최초의 중앙발전소를 세우고 뉴욕시 일부에 전력을 공급했다. 곧이어 수많은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발전소를 건립했고, 에디슨은 국가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미래는 너무나도 창창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에디슨이 고안한 직류방식의 전력시스템으로는 산업용 전기를 원거리에 공급할 수 없었다.

교류방식이 요구됐던 것이다. 그의 조수였던 니콜라 테슬라는 이것을 알아채고, 에디슨에게 교류방식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으나 그 어떤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에 발탁되고, 도금시대를 풍미했던 막강한 은행가 J.P. 모건은 에디슨의 전기회사를 사들여 제너럴 일렉트릭을 설립한다. 새롭고 우월한 기술을 거부함으로써 에디슨은 결국 테슬라에게 영광의 무대를 넘겨주게 된 것이다.

교류에 대한 에디슨의 저항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실책으로 입증되었다. 그런데 에디슨은 또 한 번 실책을 한다.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가 오락성이라는 상업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로지 속기용 구술 녹음기의 용도로만 고집함으로써 또 다른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에디슨은 천재적인 두뇌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정태적 집착’인 인지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처럼 인지함정은 도처에 숨어있다.

2006년 7월 12일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스라엘 신임 수상 에후드 올메르트는 대규모 보복정책을 펼쳤다. 올메르트는 이스라엘이 공격 당하는 것은 자신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나약함으로 적들이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노출불안’의 인지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 수 천명이 죽고 국제사회 여론이 등을 돌렸으며, 아랍전체를 적으로 만들었다. 수상은 끝내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일로 이스라엘의 약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원인혼란’도 인지함정의 하나다. 고대 로마에는 말라리아가 창궐했다. 환자들이 악취가 심한 곳을 다녀오면 병에 걸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늪의 나쁜 공기를 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말라리아가 마을을 덮쳤을 때 늪의 물을 빼니 신기하게도 질병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들은 학질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혈관 기생충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1천년이 지나도록 그릇된 믿음을 맹신했다. 그 결과 말라리아 치료법을 발견하는데 수천 년의 시간이 소진되고 인간의 희망적 미래에 해를 입혔다.

미국이 겪은 베트남의 재앙도 평면적 인지함정이라고 볼 만하다. 제프리 삭스의 충격요법도 만병통치라는 인지함정의 결과이며 그 결과는 러시아의 붕괴로 이어졌다. 정보에 대한 지독한 편견도 정보집착증이라는 인지함정에 빠지게 하며,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울이미지도 인지함정에 빠지게 한다.

인지함정은 에디슨같이 개인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기관의 장이나 국가의 지도자일 경우 기관이나 나라를 망하게도 한다는 의미에서 교육적으로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도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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