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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劉邦)선생님, 항우(項羽)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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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劉邦)선생님, 항우(項羽)학생
  • 이정재
  • 승인 2009.11.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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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前 광주교대 총장

그 옛날 중국 대륙에서 진승, 오광의 농민봉기를 기폭제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진나라 타도의 물결은 마침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양자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다.

항우는 초나라에서 대대로 장군을 지낸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숙부의 손에 길러졌는데 소년 시절부터 무예가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유방도 역시 초나라 사람이었지만 항우와는 달리 이름 없는 농민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농사에 뜻을 잃은 그는 각지를 유랑하다가 고향에 돌아와서는 명문 가문인 여공의 딸과 결혼하였다.

고향의 말단관직에 오른 유방은 죄수들을 인솔, 여산릉 축조에 동원되었는데 도망하는 이가 속출, 화를 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는 아예 이들을 풀어주고 스스로 유격대장이 됨으로써 반군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항우에 비하면 그의 출발은 참으로 미미한 것이었다.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나며 수려한 이미지를 가진 항우는 누가 보아도 영웅이며 제국의 천자의 상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유방은 우둔해 보이며,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나약한 모습이어서 그 누구도 그의 모습에서 영웅의 기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 두 인물의 외향적인 모습만을 볼 때 대륙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마치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대결의 구도로 보여 졌던 이들의 경쟁은 결국 예상 밖의 결과로 매듭지어졌다.

기원전 202년 항우를 제압한 유방은 마침내 한 왕조를 세웠으며 한 고조가 되었다. 농민 출신이었던 유방은 항우보다 뛰어난 능력은 없었지만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인재를 잘 활용했으며,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언제나 현실에 충실함으로써 마침내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항우와 유방의 서로 다른 성향은 인간을 비교할 때도 종종 인용된다. 어떤 사람은 강하며 유능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찾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볼품은 없어 보이나 자애롭고 믿음이 가며 다정다감해 보인다. 우리는 종종 전자의 경우 ‘항우 같은 사람’이라고 하고 후자는 ‘유방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성향이 꼭 이렇게 선을 그어놓은 듯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중에는 내?외적인 모습이 나무랄 데 없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교사의 모습에서도 항우와 유방 같은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학생을 압도할 만한 지식과 기능 및 외형으로 학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여하고 통제하며 자신이 판단한 올바른 지식, 가치, 태도를 주입하려하는 항우와 같은 전제형의 선생님이 있다. 반면에 유방과 같이 스스로의 존재를 낮추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중요시하고 학생을 믿어주고 학생의 자율적인 행동을 장려해주는 민주형의 선생님도 있다.

교사의 이러한 성향은 학생에게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교사의 성향은 학생의 학업 성취도, 독창성, 예술성, 학습에 대한 흥미와 태도에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교사의 성향에서만 항우와 유방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학생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또는 교사와 관계에서 발견되는 학생들의 성향은 교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은 만남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었다. 만약 우리들의 교실에서 항우와 같은 교사와 유방과 같은 학생이 만나다면 유방과 같은 학생의 온유하고 인간적인 면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학생이 교사에게 미치는 영향보다는 교사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휠씬 크고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방과 같은 교사가 항우와 같은 학생을 만난다면 이보다 이상적일 수 없을 것이다. 유방과 같은 선생님의 인간적인 사랑과 관심, 믿음의 교육은 항우와 같은 학생들에게 감동 감화를 줄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머지않아 항우와 같은 학생들도 내적인 면에서의 유방과 같은 교사의 성품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방과 같은 교사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소명의식이며, 기본 태도로는 겸허, 사랑, 개방성이 필요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제시한 인간중심주의 교사는 진실된 교사,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교사, 공감적 이해를 가진 교사 즉 인간 존엄의 신념이 투철한 교사였다.

바로 이러한 교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유방과 같은 선생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유방과 같은 성품에 항우와 같은 외모와 능력을 겸비한다면 이는 교사로써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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