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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소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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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소한 일들
  • 이기홍
  • 승인 2009.11.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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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전남도교육청 교육정보화과 과장

오랫동안, 정확히 말해 11년 반 동안 광주로 출퇴근을 하다 청사가 남악으로 옮겨와 집이 지척이 되니 아침 시간이 여유롭다. 일어나 늦장을 부려도 출근해 보면 매번 빠르다. 곧장 자리에 들지 않고 청사 여러 곳을 둘러본다. 청소하는 두 아저씨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원수의 자람도 살핀다. 짓고 있는 직원 지원센터도 들러, 어제보다 얼마나 더 지어졌는가 살펴본다.

현관에 들어서 서편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계단수도 세어본다. 1층에서 2층까지는 18계단씩 36계단이고, 2층에서 3층까지는 15계단씩 30계단이다. 화장실에 들러 창 너머로 경찰청 청사 공사현장을 바라본다. 일찍 출근해 물걸레질을 하는 직원과도 인사를 나눈다. 비어있는 직원들 자리도 살펴보고 자리에 앉아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도 바라본다.

아침이 여유로워서 그런지 하루 일과가 쫒기지 않는다. 일처리도 비교적 잘된다.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도 풍요로워지고, 전화 통화도 덩달아 자상해 진다. 매일 여성 회관도 건너다보고 오룡산도 쳐다 본다. 직원 지원센터 짓는 것을 둘러보다 의문이 생긴다.

바닥 마루를 깔기 위해 받침목이 놓여있는데, 가로 세로 2중으로 일정한 간격이다. 300평 정도 되는 바닥이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며 질서정연하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깔려있는 받침목이 일정한 간격으로 톱질로 이어져 있다. 한두 개가 아니라 가로 세로 2중 받침목 전체가 그런 상태이다. 작업하는 분께 알아보니, 운동을 하는 바닥이라 한 쪽에서 바닥에 충격을 주더라도 그 진동이 멀리까지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설계에 나온 것이냐고 묻자 시방서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서쪽편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동쪽편 계단보다 2계단이 더 많다. 서쪽편은 18계단씩 36계단이고, 동쪽편은 17계단씩 34계단이다. 공사가 잘못되어서 그러는 것일까. 궁금해 시설과에 알아보니 승강기 입구를 마련하기위해 복도를 넓히느라 경사도가 달라 그런다는 것이다. 아무튼 전남도 교육청 청사의 2층으로 오르는 동쪽 계단과 서쪽 계단은 그 갯수가 다르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여사님들을 살펴본다. 무겁고 뜨거운 밥통을 배식대에 올려놓느라 안갖 힘을 쓴다. 뜨거운 밥통을 맨손으로 옮기는 모습이 이상해 손잡이를 살펴보니, 밥통은 뜨거운데 손잡이는 뜨겁지 않다. 밥통은 은회색의 알루미늄인데, 그것에 달린 손잡이는 자줏빛 가공 스텐레스이다. 주방 제조 회사에 알아보니 손잡이는 빨리 식도록 고안된 것이라 한다.

복도를 지날 때면 청사를 청소하는 여사님과 자꾸 조우하게 된다. 인사말을 겸해서 청소구역이 어디냐고 묻자 1층과 3층이라는 것이다. 왜 2층을 건너뛰느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이 2층과 4층을 담당한다며 청소면적을 같게 하기 위해 그렇게 나누었다는 것이다. 1,2층과 3,4층으로 나누어 오르내리기 편리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여사님들은 청소 면적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보면 전남경찰청사 공사현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점심시간이면 덤프트럭들이 쉬는데 11대 중 6대가 흙을 덤핑하는 자세로 쉬고 있다. 공사현장은 흙을 파 실어가는 곳인데 왜 그러는 것일까?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현장을 찾아 알아보니, 흙을 덤핑할 때, 덤핑이 잘 되도록 바닥에 묻어있는 물기를 말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포클레인이 2대이니 5대씩 10대이거나 6대씩 12대가 되어야 하는데 왜 11대로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 설명은 잘 할 수 없으나 현장에서 하루만 같이 일하면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된다면서 그렇게 해야만 일이 잘 된다고 한다. 1대에 흙을 퍼 올리는데 1분 30초 정도 걸린다고 하면서 덤프트럭 총 소요 대수는 포클레인 대수와 흙을 버리는 거리에 의해 결정되는데 대부분 홀수로 한다는 것이다.

트럭 1대당 운반 가격을 정해 일을 하고 홀수로 차량을 배치할 경우 차량과 포클레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버려지는 시간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포클레인 2대에 덤프트럭 11대, 왜 짝수가 아닌 홀수 일까? 짝수가 갖는 안정성보다는 홀수가 갖는 역동성이 더 요구되어 그렇게 배치해 놓은 것일까?

짝을 찾지 못한 하나가 짝을 찾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니 짝을 이룬 다른 것들조차 방심하고 있을 수 없게 된다. 자연 긴장감이 넘치고, 경쟁력이 생겨나게 된다. 평생토록 누군가는 짝을 찾아 헤매야 되는 삶의 현장, 홀수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러한 몸부림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뜨거움, 그래 동양에서는 짝수를 음수라 부르고 홀수를 양수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삶의 현장인 공사장에서는 안정성보다는 에너지 넘치는 역동성이 더 필요해 그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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