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주례 이야기
상태바
주례 이야기
  • 오덕렬
  • 승인 2009.11.16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덕렬∥前 광주고 교장 · 광주문인협회 회장

“동생이 주례를 서야겠네.”

조카의 결혼 날짜가 받아지자, 종형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형님의 말씀이라 감히 빠져나가려는 어떤 언덕거리를 댈 수가 없어 그날로 주례를 설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서게 되는 주례인지라 설렘이 뒤따랐다. 주례를 설 처지인가, 혼례식 예절에 맞게 진행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시작하여 주례사에 담을 내용, 식장의 위치와 크기, 첨석하실 손님들……. 생각은 생각을 물어내어 한이 없다. 가정보감을 들여다보다가 내일 예식을 올릴 그 곳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나는 하객의 자리에 앉아 주례의 입장이 되어 본다. 그 많은 예식을 보아왔지만 여태까지 그저 건성건성 넘긴 일들이 후회로 남는다. 뜻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옛 말씀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코앞에 닥친 일이어서 미룰 수도 없어 여지껏 보아온 주례들의 언행에서 타산지석의 가르침을 찾아보기로 한다.

예식 시간 훨씬 전에 식장에 도착해야 하겠다. 갑자기 찻길이 막혀 주례를 못 서는 경우를 보았음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경건하게 이끌고, 신랑신부가 맞절을 한 때는 적당히 간격을 띄워야 하고, 주례사는 원고로 준비하되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례석에 서서 하객으로 가득 차게될 내일의 상황을 그려본다.

드디어 주례로서 단상에 섰다. 신랑이 박수를 받으며 당당하게 입장하고, 신부가 아버지와 손에 인도되어 사뿐사뿐 걸어온다. 신랑이 앞으로 나아가 신부를 맞이한다. 공손히 절을 하는 모습은 ‘잘 길러주신 따님, 이 시각부터 저의 아내가 됩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천생 배필을 얻은 신랑은 벅찬 감격에 당황했던지 신부와 서야 할 위치가 바뀌고 말았다.

주례를 제대로 서는지 어떤지 시험해 보려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신랑 신부의 맑은 눈이 나와 마주치자 미소를 주고는 서로 자리를 바뀌어 서도록 손짓을 보냈다. 신랑은 씨익 웃으면서 알았다는 듯 재치 있게 위치를 바꾼다. 맞절, 혼인 서약에 이어 주례사를 할 차례다

본 주례는 신랑과 숙질간으로, 오늘 주례를 맡은 것은 종형님의 깊은 뜻에 따랐음을 말씀드립니다. 혹시 하객들에게 궁금증이 있을까 보아 사족을 달고는 준비한 원고로 주례사를 시작 했다.

을해년 정월, 길일을 택하여 일가친척 친지 여러분을 모시고 신랑 오세원 군과 신부 유상희 양의 혼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혼인을 인간지대사로 일컫는 것은 여기에 큰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따로 태어나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는 동안 억겁의 좋은 인연을 쌓았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축복 속에 부부로서 제이의 탄생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생대를 이해하는 극점이라는 옛 말씀이 있고, 또 결혼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라고 말한 시인도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긴긴 대화를 이어가려면 사랑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건강할 때나 괴로울 때나 즐겁거나 슬플 때, 어떠한 경우라도 서로 의지하며 뜻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여성으로, 아내는 남편이 이 세상 최고의 남성으로 성숙해 갈 수 있도록 서로 부족한 부분을 사랑과 신뢰와 이해로써 메워 가야 할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는 세계화니, 무한경쟁 시대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세계화의 시작도 내 가정에서부터요, 무한 경쟁 시대를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도 가정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것’을 개성 있게 잘 가꾸어 가장 좋은 것이 되게 하였을 때, 그것이 바로 세계화로 나가는 첫 걸음이요, 무한 경쟁 시대를 이기는 길일 것입니다.

만장하신 하객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어 너른 인생 항로를 떠나는 신랑 신부에게 우리 선인들의 지혜를 빌어 몇 마디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근원적인 것이 있으니 인륜이 그것입니다. 신랑은 처가에서, 신부는 시가에서 많은 인간관계가 새로이 형성되었습니다. 지금보다 더욱 우애가 깊고 화목한 집안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부부간의 예절을 잘 지키며, 오늘이 있기까지 자나깨나 애써주신 부모님께 항상 효도합시다. 아울러 웃어른을 공경하며 주위 분들께 고마움을 느끼면서 훈훈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또 맡은 일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를 갖도록 합시다. 하는 일이 크던 작던, 자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세상에 보람된 흔적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 쓰며 창조적인 생활을 합시다.

끝으로, 오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부부가 되었으니, 그 건강을 영원히 지켜 가야 하겠습니다. 건강 없이는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사람된 도리를 다하는 일도,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이상을 펴는 것도 건강했을 때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건강을 지켜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 바라며 주례사에 가름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