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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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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배우기
  • 안용호
  • 승인 2010.02.1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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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 장학관

대학졸업생이 ‘스타강사’를 꿈꾸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오늘날의 교육 문제는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후에는 우리 스스로 고쳐가면 되지만 교육의 경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바른 자세란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 성찰한 결과에 대해 성실하려는 지향과 실천 및 그러기 위한 고뇌는 시공을 초월한 우리가 피하지 못할 영원한 과제이고 한없는 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이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대학에 몇 가닥의 답이 있다고 보았다.

대학은 1천 753자의 작은 책이다. 작가 불명이라고 해야 하나, 주자는 공자의 수제자였던 증자와 그 문하생들이라고 단정하였다. 주자에 따르면 대학은 본래 205자의 경 1장 및 그 경을 증자의 제자가 해석한 1천 546자의 전 10장으로 성립되어 있었으나 흩어져 있어서 다시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는 대학은 주희가 성리학의 입장에서 재정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 본래의 의도와 주희의 생각, 왕양명의 생각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가 오늘날의 상황에 맞추어 재해석함으로써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보았다. 당나라 이전의 유학이 오경 중심의 유학이고 송나라 이후의 유학이 4서 중심의 유학임을 감안하면 대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사실 동양적인 것의 슬픔은 모든 것이 제왕학의 입장에서 정리된다는 것이다. 서양의 역사가 인간의 자유를 왕으로부터 빼앗아 오는 역사였다면 동양의 역사는 왕이 백성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된다고 계속 역설하면서 모든 것을 왕에게 귀속시켰다. 유교도 치자중심의 권위주의적 지배체제 유지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분명 유교 본래 모습의 왜곡이었다.

이 왜곡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본래의 도덕주의적 성격 회복과 이를 위한 지식주의적 처방을 들고 나온 것이 송대 주자학이다. 이제 주자로부터 1천여 년이 또 흘렀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 맞게 해석하여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학도 우리에 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대학의 삼강령과 팔조목을 음미해 보자.

대학의 삼강령은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데 있고 신민하는데 있으며 지선에 머무르는데 있다’고 말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교육은 마음을 밝히는데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다 둘러보아도 교육을 이렇게 말한 것은 없다. 학습의 원형이 인간 자신이며 그것의 방법이 자기주도적 배움이라는 점은 후세의 역사가나 문명사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확인되어 왔다. 대학은 우리에게 마음의 눈을 틔우는 교육을 하라고 제시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명덕은 밝은 덕,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인간의 밝은 본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쉬지 않고 마음을 갈고 닦으며 공부를 해야 한다. 덕은 자기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밝혀나가는 것이다. 공부도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공부를 스스로 하게 하기보다는 반대로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다.

대학의 팔조목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만물의 존재 이치를 깨달은 뒤라야 자기의 앎을 이루고, 앎을 이룬 뒤라야 자기의 뜻이 진실 되게 되며, 뜻이 진실 된 뒤라야 자기 마음이 바르게 된다. 또 마음이 바르게 된 뒤라야 자기 자신이 닦아지며, 자기 자신이 닦아진 뒤라야 집안이 가지런해 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라야 나라가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팔조목은 평생학습의 입장에서 서술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앎을 통해 그것들의 본질을 알아내고, 그로부터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 스스로 자기를 아는 것의 시작이다. 대학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학습의 기쁨은 자연스러운 배움의 본질에 접근한 학습 쾌락,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을 통해 만드는 삶, 그리고 생각하는 삶을 통해 얻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은 좋은 책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책이다. 삼강령 팔조목만 보더라도 교육의 본질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민주 시민의 자질과 미래 통치자들의 궁극적 목표와 원리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은 학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 주고,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직접 만나보고 이해하며 나아갈 바를 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각별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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