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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화합정신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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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화합정신을 배우자
  • 나윤수
  • 승인 2010.03.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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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수∥본지 고문

법정 스님을 책으로 만난지는 꽤 오래된다. 80년 초반 군사 정부시절, 군대 막사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는 스님의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은 '무소유'. 소유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모든 가정이 스님 책 한권쯤은 거의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훌쩍 떠났다. 며칠 전 다비식에 참가해 스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고 왔다. '비구 법정'이라는 창호지에 쓴 문구가 전부였다. 가시는 모습도 무소유란 뭔지 보여 주었다. 그런 법정 스님은 타종교에도 관대했다.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등 다른 종교에도 차등을 두지 않았다. 그것이 곧 우리가 잃어버린 시대 정신을 일깨고 있다. 우리 교육에도 스님이 남기신 유산이 무소유, 화합과 배려 같은 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교육이란게 원래 사람다운 사람 만드는 과정 아닌가. 정작 우리 교육은 지금 어떻게 더 소유할지만 가르친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자식 가르치는 일에만 혈안이다. 그러나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기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데 있다. 어떻게 하면 남을 짓밟고 올라 설 것인가를 고민해서는 어떤 교육정책도 교육을 바로 세울수 없다. 기본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교육개혁은 교육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은 “헌신적인 교사, 실력있는 교사가 보람을 느끼면서 학생을 잘 가르칠수 있도록 제도를 확립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책임지고 지도하며 뒤쳐진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교사, 학생, 국가가 모두가 꿈을 갖고 교육을 만들어가자는 데 누가 마다 하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우리교육에서는 아무래도 철학이 빠져있다고 본다. 왜 교육을 시키는가. 왜 학교에 다니는가. 왜 잘 가르쳐야 하는가 같은 본질적 문제가 빠져 있다. 그냥 죽자 살자 가르쳐 좋은 대학 가서 잘 먹고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 목표가 되버린 듯 하다. 어려운 시절에는 교육만이 살 길이다고 외쳤다. 그러면 다 해결되는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을 많이 받아도 행복과 직결되지도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교육을 너무 많이시켜 탈이 나는 교육과잉시대다. 최소한 지금은 누구나 다가는 대학 가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고 물어도 봐야 한다. 최근 고려대 학생의 인간 선언이 화제다.

고려대 김예슬양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썼다. 물론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입학후에도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몰리는 젊은 88만원 세대의 외침을 우리교육이 한번쯤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김양은 치열하게 경쟁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더 무시 무시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음에 절망하고 있다.

“진리도 정의도 우정도 없는 죽은 대학”이라는 대목에서는 부끄러움 마저 느끼게 한다. 실제 대학은 입학하자마자 취업노예가 돼 곁에 학생이 누군지도 모른 경우도 많다. 대학에 있어야할 낭만도 철학도 없다. 그런 숨막힐 듯한 공간이 대학이라면 대학은 김양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이미 죽었다.

젊은 치기라고 하기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 한다. 많이 배웠다해서 행복하지 않고 많이 가졌다해서 행복하지 않음을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배움이 오히려 부담스러워지는 세태를 고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법정스님을 그리워 하는 것은 그분이 많이 배워서가 아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도 존경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떠남을 아쉬워할 수 있음을 보여준데 있다. 우리가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 학생들은 똑똑하고 현명하다. 법정 스님은 만장하나도 없이 떠나면서도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가셨다.

류시화 시인 말처럼 “이제는 침묵으로 존재하는 그분과 내밀히 대화할 시간”이다. 어쩌면 슬픔으로 문을 닫아 걸 시간인지 모르겠다. 우리교육 이제는 스님이 가르쳐준 무소유와 화합, 배려를 가르치자. 젊은 여학생이 대학을 거부할 정도라면 정신을 이쯤해서 정신을 차릴 때도 됐다.

더많은 학생이 학교를 거부하기 전에 우리는 달라질 수 없는가. 이제 스님은 그동안 말 빚을 갚기위해 책마저 절판 한다고 하니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래 저래 우리 교육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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