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소중한 우리 땅, 독도
상태바
소중한 우리 땅, 독도
  • 안용호
  • 승인 2010.04.07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 장학관

일본 정부가 내년도 모든 초등학교 5-6학년 사회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시한 지도를 실을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의 이러한 행위는 초․중․고교 전반에 독도 영유권 의식화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도로 명백히 한국민에 대한 도발이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독도 영유권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그리고 끈질기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준다. 정권이 바뀌어도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정권의 구분이 없이 아주 끈질기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이에 정 총리는 아이들에게까지 거짓교육을 시킨다고 질타했고, 동북아 역사재단 등 학계에서도 일본의 만행을 알려야 한다고 흥분하고 있다. 4월 2일 히라노 히로후미 관방장관은 ‘교과서 독도검정, 문제없다’는 망언을 또 했다.

여기서 소중한 우리 땅을 일본이 여름철 수랑논의 거머리처럼 빨아먹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왔는가를 잠깐만 살펴보자. 왜구는 13세기부터 발호하기 시작하여 임진왜란 이전까지 300여 년 동안 한반도 연안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1419년 왜구가 침입하자 태종은 이종무로 하여금 227척의 병선과 1만 7천 명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하여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고 조선 영토로 귀속시킨 바 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면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1592년 6월 15일 평양이 일본군에 함락되자 명은 신속히 원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명과 일본은 전쟁 중에도 강화회담을 열어 대동강을 경계로 조선을 분할하자는 협잡을 하고 있었다. 38선의 비극은 이 때 싹트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이라는 떡을 그렇게도 먹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먹지는 못했다. 1598년 11월 일본군이 총퇴각함으로써 7여 년간 이어진 조일전쟁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300여 년이 흘렀다.

일본의 개항으로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막부정치가 끝나고 천황 중심의 체제가 탄생했다. 일본에서는 정한론이 대두되었다. 일본에서 정한론 자들과 반대파들의 싸움은 정한론 자들의 실각으로 막을 내렸다. 전쟁은 안 일어났지만 일본은 강화도에 침범하여 미국의 강압에 의해 문호를 개방했던 역사적 경험을 조선에 적용시켜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2차 한반도 침략의 통로가 열린 것이다.

198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 농민군이 궐기함으로써 동학농민 전쟁이 일어났다. 조선에서는 청에 원군을 요청했고, 1894년 청군이 아산만에 진주하자, 일본도 조선에 진주했다. 청과 조선의 전쟁이 목전에 이르자, 영국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양국에 한반도의 분할을 제안했다. 청은 공동 점령 안을 승낙했지만 일본은 거부했다.

일본은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키고 싶어 했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기울 무렵 청은 강화회담을 서둘렀다. 1895년 4월 청과 일본은 시모노세끼에서 조약을 맺고 전쟁을 종결했다. 청은 우리나라에서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요동반도, 대만, 팽호 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 이에 만주로의 팽창을 추구하던 러시아가 일본을 견제하고 나섰다.

프랑스와 독일이 러시아에 동조했다.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에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요동반도를 청에 되돌려 준 대가로 청으로부터 대련과 여순을 조차 받아 동북아시아 경영의 본거지로 삼을 수 있었다. 청이 열강의 압박으로 약해진 틈을 타고 러시아는 만주지역으로 남진했다. 러시아는 1860년 블라디보스톡을 강점한 후 만주에서 세력이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한반도가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 일본은 러일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러시아와 만주와 한반도 분할 구도를 두고 협상을 계속했다. 참으로 끈질기고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일본은 1905년 전시 각료회의에서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해 일본은 국제적 승인을 받는 치밀함을 보인다.

7월에 태프트-가츠라 비밀 각서를 통한 미국의 승인을 받는다. 이어서 8월에는 2차 영일 동맹을 통한 영국의 승인을 받았다. 러일 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요동반도는 물론 남만주 철도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한반도 점령을 제어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대한 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건국 14년 만에 멸망했다.

우리는 36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아야했다. 해방이 되자 우리는 남북으로 갈렸다. 한말 열강들과의 각축의 와중에, 우리 땅을 삼키기 위한 일본이 보여 준 치밀함과 끈질김은 소름끼칠 정도다. 독도 주장은 그 연장선에 있다. 우리는 흥분할 것이 아니라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면서 우리의 힘을 길러야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