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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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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안용호
  • 승인 2010.05.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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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 장학관

초등학교 4학년 때 불갑사로 소풍을 갔다. 3시간을 걸어서 불갑사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본 것은 사천왕상으로 기억된다. 사람을 발로 딛고 손에는 다른 주물을 들고 두 눈을 부릅뜬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의 커다란 모습은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보제루를 지나 목어를 보면서 그 크기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대웅전을 오르면서 처마에 걸려있는 풍경을 보았는데 그 풍경소리가 아주 청아했다. 그리고 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아주 작은 물고기가 풍경의 벽을 치기 때문이었는데 소가 달고 다니는 것과는 달랐다. 또 대웅전의 내부를 보면서 탱화와 닫집의 모습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살아 온 불교 예술품들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그 뜻을 깨달으며 엷은 미소를 짓게 한다. 더구나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가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은 원래 ‘별주부전’으로 어른들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모아놓은 ‘자타카’에서 유래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동물이 등장하는 설화로 꾸며진, 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담긴 ‘잡보장경’에서 큰 거북의 인연 편을 보면 부처님은 전생에 거북이었으며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생에 부처님은 죽음과 고통의 차안을 건너게 하는 거북으로 등장하여 자기 꾀에 빠진 토끼 같은 중생들을 피안에 이르게 해, 중생 사랑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통도사 명부전의 토끼와 거북이 벽화는 부처님의 전생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벽화인데 부처님 거북이의 등에 탄 토끼의 모습이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듯 웃음을 자아낸다고 한다.

화엄사 구층암 천불보전 외벽 기둥 위에는 이곳이 극락인 양 연꽃으로 가득한 공포 밑에 용머리 대신 거북의 등을 탄 토끼의 모습을 새겨서 이채로운데 거북보다 토끼를 더 크게 장식하여 중생이 부처보다 존귀한 존재임을 실감케 하는 해학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도가 통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밀양 표충사 대광전 수미단 부분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다지도 커서 자신을 해치려는 모든 무리들까지 자비로 감싸 안으며 중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을 거북으로 표현한 것이 참으로 이례적이고 해학적이지 않는가? 한국적 해학이라 할만하다. 절에 가면 어디나 용이 보인다. 용은 주로 불단 닫집 천장에 조각으로 장식되거나 어간 앞 등 부처님의 전면을 주로 장식한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의 용은 잠자리보다 작다고 한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수마단의 용은 너무나 우습다고 한다.

흰 송곳니를 길게 드러내고 눈이 풀어져 해롱거린다면 어떻게 웃지 않고 배기겠는가. 부처님의 세계는 절대 평등의 세계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각자 자기의 삶을 최고로 느끼고 살아가는 연화장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용도 다른 동물과 똑같이 장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만심을 없애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경산 환성사 수미단에는 원숭이 조각이 두 군데 있는데 한 곳에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바치려고 여의주를 담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있다. 여의주는 자기가 이루려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보배로써 육도중생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보물이지만, 원숭이는 이것을 부처님께 바쳐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얼마나 인간의 욕심에 대한 해학적인 질책인가! 보배를 바치는 공양원숭이의 표현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세계를 질책하려는 듯 교훈의 해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은 전생에 원숭이 등 여러 가지 생을 받아 많은 선행과 공덕을 쌓으셨다. 절에 가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교육자들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부처님은 교육의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인에 대하여 묻자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고, 제자 안연이 묻자 자기를 극복하고 예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다르게 말했듯이, 부처님은 이야기를 통해서 수준에 맞게 깨우치도록 하셨다. 그 제자들은 동물을 통한 미술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 않는가! 선생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생각을 바꾸고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편 가르고 헐뜯고 돈만 벌려고 버둥거리지 말고 작은 일에도 만족하면서 베풀고 나누는 자비심도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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