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섬진강을 따라가 보라
상태바
섬진강을 따라가 보라
  • 정영희
  • 승인 2010.09.14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영희∥여수 소호초 교감

한국의 아름다운 길 3선에 꼽히는 섬진강 길은 계절마다 달리 피는 꽃으로 인해 섬진강물이 색색의 꽃물로 채색되는 비경이 있다. 봄이면 벚꽃터널이 으뜸이요, 여름에는 노랑 원추리가 만발하여 속을 끓이더니 가을에는 배롱나무가 삼색 빛을 발하여 오가는 이의 발길을 심란하게 만든다.

'비단 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 피어 있으니 품격이 최고이다.' 라고 한 강희안의 『양화소록』이라든지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 서로 백일을 바라보니, 너와 더불어 한 잔 하리라' 라는 성삼문의 시구에서 보듯 한여름을 수놓는 그 처연한 붉은 빛의 배롱나무가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섬진강 국도변 백리 길을 따라 지금 아름답게 피어있다.

떠나는 벗을 그리워한다는 꽃말 때문인지 배롱나무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여기 아니면 여간 보기 힘들다. 섬진강가에는 그리움에 목마른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사는 모양이다. 배롱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오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붙들려는 심사이고 보면, 그러나 정작 쉼터에 앉아 호젓하게 섬진강 노을을 읽고 있는 사람 찾기가 힘들다.

그러기에 백일동안 피어 있다가 꿈결처럼 저버린다는 배롱나무의 시한부 생명을 위로할 사람이 지금 없는 것이다. 해지는 섬진강가에서 노을빛으로 숨 가쁘게 피어난 꽃이 무슨 꽃이라고 해도 좋다. 쑥부쟁이라 해도 좋고 구절초라고 해도 좋다. 찾아가서 단 한번만이라도 바리톤 색깔로 그 이름을 불러주라.

내 눈에 다 담아오기에는 내 눈이 너무 적다. 풀어헤쳐 놓는다한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랴. 보고 마음에 까지 가득 담아 와야 그 향기가 짙게 오래 간다. 오는 도중에 구례구역 앞에서 민물 참게탕이나 다슬기 수제비 국물이라도 한 숟갈 뜨고 오면 한 달은 쓰린 속이 한결 가뿐해질 것이다.

웰빙시대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쉬기 위해 막상 집을 나서려고 하면 이것저것 챙길 일이 많다. 그러다보면 항상 마음만 먼저 가 있다가 다시 되돌아오기 일쑤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여행의 묘미는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떠나는 수행이다.

떠나보라. 시간이 없다. 백일동안 피는 시간이 이제 달포 밖에 남아있지 않다. 먼저 간 사람들이 다 보고 읽고 오면 늦게 간 사람은 쭉정이만 담아올지 모른다. 시간이 부족해도 화개장터에 가 조영남의 노래에 장단도 맞춰볼 일이다. 조금 있으면 누런 모과와 빨간 단감이 당신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낼 것이다.

작설차 한 잔 마시며 지리산 벽소령 늙은 소나무도 바라볼 일이다. 청량한 바람에 씻겨 내리는 폭포수가 화개천을 따라 흘러간다. 당신도 그 물살에 몸을 실어보라. 돌아오는 길이 밤일지라도 대낮처럼 환할 것이니 지금 당장 차의 시동을 걸고 빈 몸으로 훌쩍 떠나라. 기다리던 가을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