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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본능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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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본능에 산다
  • 정영희
  • 승인 2010.10.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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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여수 소호초 교감

토끼 네 마리를 입양했다. 모 학교에서 손수 기르는 토끼를 무상으로 주신 것이다. 학교에서 토끼를 기르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학생들의 동물생태학습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선뜻 분양을 받았다. 울타리를 치고 토끼장과 먹이를 준비하여 학교 풀밭에 놓아두었다.

동물에게도 가출본능이 있는 모양이다. 토끼는 가출본능을 넘어서 하이에나처럼 길길이 뛰고 싶은 질주본능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갇힌 처지여서 몸을 떤다. 낯선 환경에 적응이 되려면 며칠 걸리겠다. 사람들에 의해 가출본능, 질주본능이 제지당한 탓이리라. 저러다가 병날까 싶다.

토끼가 가출했다. 두 마리의 수컷이다. 느슨한 울타리 틈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고양이에게 홀렸거나 차에 치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할 뻔 했다. 주소도 없는 집을 알 리가 없기에, 가출 후 이틀 만에 돌아왔다. 신기했다. 귀가가 이렇게 즐거울 때가 없었다.

어떻게 알고 제집이라며 찾아왔을까? 암컷 때문이었을까? 영역을 표시해 두었던 또 어떤 무엇이 있었을까? 집토끼라는 예상을 깨고 달리거나 지붕으로 뛰어오르는 야성이 내 눈에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이틀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또 가출본능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땅을 파고 탈주를 시도했다.

풀밭에 새 길이 생겼다. 학생들이 반질반질하게 밟아놓은 도로였다. 학생들이 목을 빼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이 학생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분간 묻지 않는 게 좋겠다. 대답을 찾기 위해 책을 열어볼 것이다. 그냥 편히 바라볼 수 있도록 내버려두자.

자연학습장에서 오골계 등 16마리를 더 입양했다. 이들의 야성 본능은 토끼보다 더했다. 집을 기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을 잘 때는 아예 5~6미터 높이의 감나무 가지로 날아올랐다. 상위 포식자로부터의 안전을 담보 받을 수 있는 지대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야성본능이 드러난 것일까?

실과교육과정 운영에 도움이 될까 해서 동물생태 관찰원을 조성해주자는 게 본연의 취지였는데 관리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장소가 문제되어 차일피일 미룬 것이 지금은 반 야생이 되었는지 집 나간 토끼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이들도 눈치 챈 모양이다.

사육재배활동이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집짐승을 기른다는 게 이런저런 이유로 쉬운 일만 아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말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동물들이 학생들의 돌팔매질과 으름장에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그만두면 될 일이지만 그만두기에는 학생들의 호기심이 놔주질 않는다. ‘선생님, 토끼 한 번 만져볼 수 없을까요?’ ‘토끼가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어떻게 잡아요?’ ‘그냥 나둬라. 돌아올 테니까.’ 지금 집토끼와 오골계는 점점 야성본능 회복 중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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