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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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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취하다
  • 정영희
  • 승인 2010.11.0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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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여수 소호초 교감
▲순천만 일대 [사진=정영희]

국내 최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에 늦가을이 저물어간다. 억새와 갈대바람이 어우러져 칠면초로 피어나고 시베리아로 떠났던 흑두루미가 귀환하여 붉은 노을을 쪼아댄다. 철새들이 이착륙을 거듭하는 동안 방죽에서는 양미역취가 제 옷을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새 날갯짓에 놀란 물결이 팽팽해지면서 먹이를 찾던 기러기 떼가 함께 솟구쳐 오른다. 순천만은 뒤덮는 새떼들이 음표가 되었다가 흩어지며 늦가을 풍경의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곳, 물살을 가르며 나가는 어선들의 하얀 궤적을 향해 사진작가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찰칵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단풍잎들이 하나 둘씩 제 몸에 불을 붙인다.

순천만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람사르 조약(Ramsar Convention), 즉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생태보전의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철새들의 군무를 두 눈에 담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순천만 풍경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 볼 만하다. 노을이 빈 들판부터 뒤덮는다. 환상적이다 못해 몽환적이다. 풍경에 취하여 비틀거릴 것 같다. 바람이 억새 간지럼을 태우는지 깔깔거린다. 멋모르고 따라 웃는 갈대는 포구에 아무렇게나 몸을 부려놓는다. 저렇게 함부로 던져놓아도 풍경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보내는 따뜻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순천만에 '순천문학관'이 개관되었다. 이곳 출신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관과 '오세암'의 작가 고(故) 정채봉관이 감나무 아래 들어섰는데 갈대로 엮어 만든 지붕에 오월의 갈잎 같은 육필원고와 유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무릇 인생은 이런 명품들을 남기고 가는구나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매년 순천만을 찾아오는 철새들이 수 백 종이 넘는다고 한다. 세계적인 희귀조류인 흑두루미를 비롯하여 노랑부리저어새, 쇠기러기 등과 같은 희귀 철새들이 V자를 그리며 서쪽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오다가다 덤으로 짱둥어탕이나 꼬막정식도 맛보면 운치가 더할 것이다.

순천만, 한 편의 가을 파노라마이자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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