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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레시피
  • 김 완
  • 승인 2024.03.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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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한장 칼럼(66)

‘어디 여자가 함부로 주방에 들어오려고 해. 이곳은 나의 영토야.~’ 최근 가수 현진우의 노래 ‘나의 영토’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가정생활에서 주방의 일을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한다는 역설적 발상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확 당겼다.

노랫말은 남성에게는 주방에서의 역할을 일반화하고, 여성에게는 음악으로나마 주방으로부터 해방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주방 문화에서 남성의 역할은 설거지인 경우가 많다.  가장 단순한 작업 같지만 인간의 섭식 생활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세계 4대 생불 중 한 사람으로 불렸던 베트남의 승려 탁닛한은 설거지 명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설거지를 빨리 해치워야 하는 숙제 같은 일이라 여기지 말고, 설거지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설거지는 요리의 시작이고, 식사의 마무리다. 매일 아침 식사 준비의 첫 번째 일이 밤새 건조된 식기들을 분류해서 제자리에 넣는 일이다. 이때 간밤의 설거지가 깨끗하게 되지 않은 부분이 나타나면 다시 닦아야 한다. 이어서 아침에 필요한 식기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음식을 담는다. 주방 위 LED 전등 빛 아래에 드러난 식기들의 속살이 투명해야 덩달아 음식 맛도 살아난다.

그릇을 싱크대로 옮기는 일이 설거지의 시작이다. 식사 후 식탁 위을 보면 어지럽다. 많지 않은 사람들의 식사임에도 필요한 도구들은 거의 쏟아져 나왔다. 남은 음식들을 하나의 그릇에 모은다. 넓은 접시 위에 작은 그릇과 식사 도구들을 짜임새 있게 얹어서 도중에 떨어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두 차례 이내에 모두 옮겨야 제법 프로 느낌이 난다. 아마추어일수록 그릇들을 여러 차례 옮긴다.          

식기들의 분류가 설거지의 기본이다. 싱크대 속에서 수저, 집게, 가위, 칼 등의 식사 도구와 밥그릇, 국그릇, 접시 등의 그릇류를 분류해 놓는다. 그릇을 겹쳐 놓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같은 크기의 그릇들을 겹쳐 놓았다가 빠지지 않아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국그릇 안에 밥그릇, 큰 접시 위에 작은 접시 등으로 겹쳐서 분류해야 난감한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선대후소(先大後小)의 원칙이 좋다. 그릇의 크기가 큰 것부터 설거지하는 것이 편리하다. 대부분 싱크대의 안이 좁아서 큰 그릇을 우선 처리해야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큰 그릇들을 씻으며 흘려보내는 물을 작은 기구들 위로 떨어지게 하면 또 한차례 씻는 효과를 가져 온다. 심리적으로도 큰 것부터 처리하고 나면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애벌 설거지가 중요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더운물을 틀어서 식기들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기름 성분을 제외한 이물질은 애벌 설거지에서 완전하게 제거해야 한다. 식기들에 묻어있는 음식물들을 장갑 낀 손으로 확실하게 문질러야 된다. 세제 설거지는 기름기를 제거하는데 유효하다. 거품을 동반한 세제 설거지 과정이 있어야 식기들이 건조하게 되면 뽀독뽀독하게 느껴진다.  

손으로 헹구고 어슷하게 겹쳐 말린다. 더운물을 틀어서 그릇들을 헹굴 때는 반드시 고무장갑 낀 손으로 면을 문질러야 깔끔하다. 물로만 흘려보내면 세제나 기름기가 씻기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 헹굼이 끝나면 건조대에 식기들을 어슷하게 겹쳐 놓아야 한다. 완전하게 겹쳐 놓으면 그릇 사이의 물기가 마르지 않아서 다음 사용에 지장을 초래한다.

식탁을 닦는 일은 마음을 닦는 일이다. 설거지 된 그릇들을 정리하고 나면 깨끗한 행주로 식탁을 닦는다. 아무리 간단하게 음식을 먹은 후라도 식탁은 반드시 닦아야 개운하다. 식탁을 닦은 행주는 세제를 조금 묻혀 깨끗하게 빨아서 건조대에 널어야 한다.

남편들이 힘들게 설거지를 하고서도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는 것이 식탁 닦기와 행주 처리다. 식탁을 닦는 일과 행주를 건조하는 일이 설거지를 마쳤다는 단아한 의식이다. 이런 마음과 방법이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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