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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은 눈도 코도 없는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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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은 눈도 코도 없는 줄 아는가'
  • 이기홍
  • 승인 2024.03.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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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前 목포교육장

사람마다 복받기를 원한다. 너나 나나 복을 받아보겠다고 꿈을 꾸고, 비나리를 하고, 심지어 부족한 돈을 쪼개어 복권도 산다. 자신만 복을 받기 민망한지 연초면 복 많이 받으라고 덕담을 건넨다. 

복이란 삶에서 누리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이다. 모든 복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의 힘을 초월한 천운에 의해 저절로 돌아가는 길흉화복의 운수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해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 번쯤은 복에 대해 궁리해 봐야 한다. 복이 눈도 코도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기에 하는 생각이다. 주라 한다고, 받으라 한다고, 이리저리 휘둘릴 복이 결코 아니다. 복은 밝은 눈을 가지고 있어 상대를 알아보고, 복은 기막힌 코를 가지고 있어 상대에 대한 야릇한 냄새를 구별해 내고야 만다. 그래 결코 허투루 복을 건네주지 않는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글자가 복자이다. 그래 세상에 태어나서 맨 먼저 복자가 수놓아진 강보(襁褓)에 싸여 어미 품에 안기면서 복자 인생이 시작된다. 매일 먹는 밥과 국도 복자가 새겨진 밥그릇과 국그릇에 담고, 밥과 국을 떠먹는 숟가락에도 복자를 새겨 넣는다.

매일 덮고 자는 이불과 베고 자는 베개에도 복자를 수놓고, 입고 다니는 옷에도 여기저기 복 복(福)자를 그려 넣는다. 심지어는 눈곱만 한 복이라도 쏟아지라고 복자를 써서 거꾸로 메달기도 한다. 한국인의 삶을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가장 끈질기고 보편적인 동기가 복이다.

복을 비는 가운데 태어나서, 복을 비는 마음속에서 자라고, 복을 비는 상황 속에 둘러싸여 복을 빌며 살다가, 다시 복을 비는 마음속에서 죽어간다. 심지어 죽어서도 복을 받으라고 명복을 빌지 않던가. 복은 한국인에게 생명의 절대 긍정이자 현실의 절대 긍정에 바탕을 둔 삶의 철학이다.

우리들이 그렇게나 원하는 복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복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다는 운명으로서의 복이 있다. 밥을 입에 물고 돈방석에 앉았다는 사주팔자로서의 복을 말한다. 또 길흉화복은 인과응보라고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로서의 복이 있다. 상벌로서의 복을 일컫는다.

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복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뚝심형 복이다. 끝으로 독실한 신앙의 결과로 절대 주권자의 뜻에 따라 배달되는 복도 있다. 유교의 조상의 음덕, 불교의 다정불심, 개신교나 천주교의 은총이 이에 속한다. 

​복자가 들어가는 말은 대부분 모두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서 발복이란 말은 가장 싫어한다.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조부님께서는 ‘오시(午時)에 하관하면 미시(未時)에 발복한다’는 말을 믿고 풍수를 앞세워 근동을 다 돌며 명당을 찾기 위해 얼마 안 된 재산을 다 탕진하시었고, 결국 아버지는 그 일로 한 평생을 가난과 싸우셨는데 그 한가운데 발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자가 들어간 말 가운데도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말은 ‘복스럽게 먹는다’이다. 소화기관이 좋지 못하고 나이 들어 이빨이 자주 고장 나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는데, 참으로 맛있게 먹는 모습에 절로 군침이 돌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맛있게 느껴지기도 해 더욱 그렇다. 

나는 오래전부터 정초에 복을 많이 받으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해왔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복을 퍼다 써 버렸는데 어찌 지금까지 남아있는 복이 더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좀 현실적인 의문 때문이고, 또 누군가는 한 사람일지라도 복을 짓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기에 ‘복받으라’는 말 대신 ‘복지으라' 하는 말을 더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복 돈을 주기 싫어서 그런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제는 복이 바닥날 때가 되었으니 우리 모두 복을 짓는 한 해를 보낼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이제는 복의 소중함을 알아서(知福), 복을 아끼고(惜福), 복의 씨를 뿌려(種福), 복을 늘려(陪福)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자 복(福) 자를 파자하면 알 수 있듯이 신은 이 땅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밭을 선물로 주셨다.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자기 몫의 밭, 곧 먹을 것, 입을 것, 누리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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