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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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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는 이유로
  • 무명씨
  • 승인 2024.03.1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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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자유기고가

가수 조항조가 불러 크게 힛트한 노래 중에 '남자라는 이유로'가 있다.  나 또한 한때 이 노래에 필이 꽂혀 노래방에 가면 으레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이 노래의 후반부에 가면 남자들이 운명처럼 안고 사는 괴롭고 답답한 심정을 절규하듯 뿜어 내지르는 부분이 있다. 

“소리 내어 울어 볼 날이~~”
이 노래 한번 부르고 나면 꽉 막혔던 숨통이 탁 터지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 말 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 역시 그런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 소리 내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남자들은 참 불쌍한 존재다. 오나가나 눈칫밥만 먹고 살기에 바쁘다. 집에서는 마누라 눈치 보고 사는 게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였다간 집요한 공격이 바로 들어온다. 혹 감춰 놓았던 비상금이 탄로라도 나게 되면 그동안에 쌓아 놓았던 신뢰는 일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혹시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남자들의 존재란 외줄타기 인생처럼 측은하고 불쌍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고부간에 갈등이라도 있게 되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식놈들이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좀 나을 텐데 백이면 백, 지 애미편이 되어 눈꼬리 치켜뜨고 공격하기 바쁘다.

이따금 피곤해 소파에서 ‘시체놀이’라도 하게 되면 젊었을 때야 힘에 눌려 꼼짝 못했던 마누라도 이제 나이 들어 별 볼 일 없어진 이 남자에겐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집중포화에 버텨낼 남자는 별로 없다. 바로 항복 모드로 들어가지 않으면 삶이 힘들어진다.  
 
직장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상사의 잔소리, 욕소리, 억지소리에 찍소리도 못하고 당해야만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열리려는 뚜껑을 단단히 잠그고 사는 수밖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불덩어리 삭히고 자존심 반납하고 사는 남자들의 하루하루는 고달프기 그지없다.

이런 남자들이 6단계를 넘어서면 그 상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은퇴한 백수에게 기댈 곳도, 피할 곳도 이 세상엔 없다. 끼니때마다 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눈치는 나이와 같은 단을 유지해야 한다. 나이가 6단이면 눈치도 6단, 나이가 7단이면 눈치 또한 7단이 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한순간 젊었을 때의 혈기를 어쩌지 못해 폭발이라도 하는 날엔 인생살이가 더더욱 고달퍼진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남녀에게 두 가지 기질을 주었다. 그 하나, 남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성화가 되고,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남성화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어 힘이 빠진 남자는 그가 젊었을 때 휘둘렀던 폭력을 역으로 맞을 위험성이 커진다. 그러므로 늙어 마누라한테 대든다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또 하나, 남자의 기억력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멍청해지지만 여자는 오히려 반대로 더 또렷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 잘못을 많이 저지른 남자들일수록 노년에는 귀가 있어도 듣지를 말고, 눈이 있어도 보지를 말아야 한다. 괜히 눈에 거슬린다고 시답잖게 대들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황혼기 그 남자의 주변엔 그를 도와줄 우군은 아무도 없다.     

내가 5단이었을 때 6단을 넘어선 선배가 손주 봐주러 마누라한테 이끌려 타지에 있는 자식놈 집에 가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이제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선배가 참으로 현명했음을, 그것만이 살길이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젊어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파릇파릇한 청춘 다 보내고 이젠 백발이 성성한 백수가 되어 오늘도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땅의 남자들, 남자라는 이유로 말 못할 사연 숨기며 그런저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남자들이 참으로 안쓰럽고 측은하다.  

그렇게 애처롭게 살다가 인생 종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좀 짠하게 봐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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