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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섬, 소록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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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섬, 소록도 이야기
  • 윤영훈
  • 승인 2024.02.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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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훈∥시인·교육칼럼니스트  

코로나19 발생 이후 4년 만에 고흥군의 새로운 명소인 소록도가 일반인에게 개방돼 방문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센인을 소재로 한 이청준 작가의 장편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나서 이곳을 꼭 와보고 싶다는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다.

소록도는 본래 관광지가 아니지만,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날로 많아져서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곳은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해서 소록도라고 불린다.

섬의 면적은 3.74㎢(113만평) 정도로 작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 절경, 중앙공원, 역사적 기념물인 한센병 박물관 등으로 인해 숱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중앙공원은 편백나무·종려나무·매화나무·차나무 등 5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공원에는 한센인을 돌보며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소록도 천사', 푸른 눈을 가진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 등을 기념하는 공적비도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구라탑의 기념물이 눈에 확 띄고,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의 시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뭉클 가슴을 후빈다. 

소록도는 1916년부터 조국이 해방된 1945년 일제 말기까지 약 6천여 명의 환우들이 섬 전체의 일주도로와 해안선 방파제 석축 쌓기 공사, 6천여 평의 중앙공원 만들기, 붉은 황토로 벽돌 굽기, 볏집 가마니 짜기, 송탄유 채취, 각종 병사 및 시설물 짓기 등등 온갖 각종 노동과 수난을 겪으면서 만들어 놓은 섬이다.

한마디로 한센병 환우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역사의 섬인 것이다. 당시 환우들은 한번 소록도에 들어오면 죽어서도 육지로 나갈 수 없다는 일화가 있다. 즉, 이들은 죽은 후에 연구의 목적으로 해부되고 이후에는 화장해 소록도 만령당(萬靈堂, 납골당)에 안치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수용을 당해 한 많은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환자들의 납골당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소록도 납골당은 이 시대에 지어져 우리나라 최초 납골문화의 시초가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 때 한센병 환자들은 다섯 차례나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가족과 생이별하며 호적을 파면서 한 번,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정관수술을 하면서 한 번, 목숨이 끊어져서 한 번, 그 시체를 해부해 또 다시 한번, 불에 태워 화장을 하면서 그제서야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평 남짓한 차가운 방에 변기만 달랑 놓여 있는 ‘감금실’은 조그만 창문에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고 있다.

저 바깥에는 푸른 자유가 있는데 작은 철창에서 갇히어 얼마나 나가고 싶었으면 창문의 쇠창살이 밖으로 휘어져 있다. 나는 이곳을 돌아서면서 불끈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로 한 편의 시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병든 것도 죄인가/ 외딴 섬에서/ 버림받은 목숨들이/ 숨 죽이며 모여 사는 곳//
화려한 젊음의 꿈은/ 단종대에서 물거품이 되고/ 마디마디 떨어진 손가락으로/
무딘 쇠창살을 휘어잡으며/ 열리지 않는 자유를 향해/ 짐승처럼 울부짖던 나날이 몇 해던가
(중략) 찐득거리는 슬픔이/ 예서제서 비밀스레 묻어 있는/ 진정 아름다워서 더 서러운 섬
                                                            -윤영훈, ‘소록도’ 일부

소록도는 한과 애환이 서려 있는 섬이기에 한낱 즐기는 관광지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의 역사를 배워가는 장소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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