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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해 절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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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해 절을 하는가 
  • 이기홍
  • 승인 2024.02.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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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前 목포교육장

난 교직 재직시 유난히 절을 강조해 가르쳤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절이라고 생각했다. 절은 인간을 가장 성스럽게 만들어주고,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절을 하는 방법이나 장소, 절을 해야 하는 때, 이런 것들을 힘주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절은 왜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절은 누굴 위해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가르친 것이다. 

내가 지나칠 정도로 그렇게 한 까닭은 절에 대한 이론은 절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절을 해야 하는 이유와 누굴 위해 절을 하는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면 나머지 잡다한 것들은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절에 대한 방법은 몰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초등교육 시절에 절에 대한 근본적이 물음에 대해 제대로 터득하게 된다면 평생 동안 영향을 미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은 우리가 절을 해야 하는 까닭에 대해 매우 해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 탑이나 불상에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절을 하는데 그것은 우상에 대한 숭배라기보다는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돌덩이나 쇠붙이에게도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하심(下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록 아내의 말을 빌려 표현했지만, 절이란 상대에 대한 공경에 앞서 자신에 대한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너무나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당산나무에 절을 하고, 신령스러운 산에 경배하고,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절이란 끊임없는 수행이고, 도를 닦는 것이며, 자칫하면 솟구치고야 마는 몹쓸 인간 본능을 다스리는 고행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외지인들이 찾아들고 있다. 최근에 여섯 가족이 찾아들었는데 그들은 회관에 들려 동네 분들과 잘 어울리고 싶다며 내게 도움을 청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네 분들 모두가 환영한다며 쇠락해 가는 마을로 들어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꼭 동네 분들에게 절을 잘했으면 좋겠다고 신신 당부를 하곤 한다.

대부분 잘 이행해 주어 어울려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다. 그런데 악의가 있는건 아닌것 같은데  한 분이 유난히도 절을 외면해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노인정에 음식을 넣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동네일에 협조를 잘하라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든 동네 분들을 만나면 서로 간에 절을 잘하고 지내자고 한 것인데 그분은 유난히도 머리를 숙일 줄 모르니 누구 하나 호감을 갖지 않는다.

자신을 내려놓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지 안타깝기까지 한다. 동네 분들은 대부분 못 배우고 가진 것이 없어 우리를 무시 보고 그런다고 오해를 한다. 그러니 더욱 꼬이고 더욱 틀어진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마주 보며 건네는 공손한 말 한마디가 그 좁은 공간을 넓게 하고, 산행 시 마주치는 등산객이 건네는 반가운 말 한마디가 온몸에 밀려오는 두려움을 누그려 뜨린다. 왜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을 절이라 이름 지었을까.

스님들이 허구한 날 그 공간에서 절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삼 배니 백팔 배니 천 배니 삼천 배니 하면서 조석으로 절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다 있는 일이지만 삼보일배를 하며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치가도 있어 절이 악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성을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법으로도 절이 활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인 절과 우리가 자신을 수행하는 행위인 절을 함께 쓴다는 점이 놀랍고 놀랍다. 

절에 대해 시험문제를 낸 적이 있다. ‘선생님과 제자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누가 먼저 절을 해야 할까요?’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물론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답이 나왔다. 제자가 먼저 절을 해야 한다는 답이 가장 많았고, 선생님은 제자를 가르치기 때문에 먼저 시범적으로 절을 해야 한다는 답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먼저 본 사람이 먼저 해야 한다를 최고의 답으로 채점했다. 물론 나머지 답도 이유가 타당할 경우 그에 걸맞은 점수를 주면서 절에 대한 교육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 절은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에 대한 교육을 했다. 절은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수없이 많은 예를 들어가며 스며들 때까지 가르쳤다.

그렇기 때문에 될수록 곱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한 정성스럽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해야 함을 가르쳤다.  상대방에게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아니 됨을 힘주어 가르쳤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절, 참으로 잘 해야 함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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