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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홍
  • 승인 2006.12.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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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목포대성초등학교 교장

초임교장으로 부임하여 학교를 돌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콕찝어 생각한다기 보다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많은 날들을 보낸다. 하루는 복도에 설치된 아이들의 신발장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신발 뒤축이 보이게 놓여진 신발장은 흉하고 또 무질서했다.

선생님들께 신발장에 신발을 정리할 때는 신발 앞부리가 보이도록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일부 선생님들께서 그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며 반대 의견을 말했으나,'우리들은 1학년' 교과서와 3학년 '바른 생활' 삽화를 보여드리며, 신발 뒤축이 신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지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도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우리 도 자체적으로 개발하도록 되어 있는 '우리들은 1학년'책을 수정 할 때의 일이다. 많은 학교에서 신발장의 신발 정리 삽화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신발 정리는 학교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방법대로 해야 된다는 의견이 들어왔다.

어떠한 결론을 내리던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들은 1학년'책을 개발한 선생님들께 의견을 구했다. 동시에 초등학교 모든 교과서를 조사하여 신발장의 신발을 어떻게 정리하도록 되어있는지 조사했다. 개발 선생님들의 의견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은 채 실험을 한 결과 90%가 넘는 유치원생이 신발을 신발장에 정리할 때 앞부리가 나오도록 하더라는 것이다.

신발을 벗고 복도로 올라와 두 손가락으로 신발을 든 다음, 그대로 신발장에 넣으면 자연스럽게 앞부리가 보이게 정리가 된다는 의견이었으며, 정리라는 의미는 보기 좋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부리가 보이게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일본에서도 신발 정리는 그렇게 한다는 보조 설명까지 해주었다.

초등학교 교과서 전체를 분석해 본 결과 일률적이지는 않았으나 대부분 앞부리가 보이게 정리된 삽화가 단연 많았다. 결국 수정심의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발의 앞이 보이도록 '우리들은 1학년'책을 발간한 적이 있다. 리 학교 전 어린이는 이런 나의 당부에 따라 앞부리가 보이도록 신발을 정리한다.

매일 아침 시업전이나 퇴근 무렵 학교를 한바퀴 돌게 되는 데, 그때 마다 나도 모르게 신발장의 신발 정리 상태를 보곤 한다. 아침이면 실내화가 내려지고 운동화가 놓인다. 퇴근 무렵이면 운동화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실내화가 놓인다. 신발이 가지런하게 놓인 반은 어쩐지 학교생활이 충실하게 이뤄질 것만 같고, 그 반대는 충실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만 같다. 어느 사이 내 스스로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유년 시절, 나는 대청마루가 유난히도 높았던 일가 할아버지 댁을 자주 기웃거렸다. 그 할아버지 댁은 언제나 엄숙했으며 일하는 식구들도 정갈했다. 그러나 근엄한 할아버지의 얼굴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대신 높은 대청마루 아래 섬돌위에 놓인 깨끗한 하얀 고무신 한 켤레는 언제나 나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 댁의 고요함과 할아버지 댁의 정갈함은 그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할아버지 댁의 그 많은 식솔들과 그 많은 농사일을 그 하얀 고무신이 진두지휘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나는 가지런한 신발에 집착한다. 신발을 정리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신발이 너무나도 다양하다. 모양뿐만 아니라 색상도 다양하다. 그 많은 신발 가운데 같은 신발이 몇 켤레 되지 않는다.

어떤 신발은 한 켤레인데도 각기 색상이 다르기도 하다. 만지면 반짝거리는 섬광이 일어나고 가만 놔두면 섬광이 사라지는 신발도 있다. 짚새기를 연상시키는 신발, 성인구두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신발, 등산화 같이 생긴 신발, 발레리나의 발싸개와 같은 신발, 그 옛날 갖바치의 명품 같은 신발이 신장마다 가득하다.

나는 73년도에 교직을 시작했다.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라는 곳에서 교직의 첫발을 내 디뎠는데, 그 때 내가 근무하던 학교 아이들의 신발은 한결같이 검정 고무신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그 핏빛만큼 빨간 새로 만든 황토 빛 운동장에서 뛰고 뛰었다. 이제 막 지은 유난히도 하얀 학교건물과 이제 막 깎아 낸 황톳빛 운동장, 그리고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타이아표 검정 고무신은 숙명 같은 내 교직의 출발이었다.

그 때 장암의 민초들은 모두가 살기위해 몸부림쳤다. 절대 빈곤의 시절, 잃어버린 그 타이아표 고무신 한 짝은 온 학교를 시끄럽게 했고, 고무신 민원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 콩밭 메는 아낙이 적삼사이로 젖무덤이 삐져나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임교사에게 들이대던 시절이 있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삶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그 무엇을 강요해서는 아니 되는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그 때 그 봄날, 쑥국새는 한낮을 울었다. 그러던 것이 30여 년을 지난 온 동안, 너무나도 많이 변해 있다. 특히 1,2학년의 신발은 정말이지 예쁘다. 형형색색인데다 모양이 신기할 정도로 다양하고 앙증맞다. 내가 어릴 적에는 닳아져 발가락이 나온다거나 못 신게 되었을 때 신발을 새로 샀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신 제품이 나오면 신발을 새로 사기도 하는 것 같다.

하루는 아침 시업 전에 신발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1학년 아이가 공책을 실내화 위에 올리고 있었다. 하도 이상하여 "왜 실내화 위에 공책을 올리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대답대신 얼굴이 빨게 진 채, 내력벽을 사이에 두고 설치된 양쪽 신발장을 잡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더욱 궁금해져 또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복도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서인지 담임선생님이 나와 그것을 지켜보다가 다그쳐 물었을 때서야 그 아이는 아직 등교하지 않은 여학생 실내화 위에 새로 산 공책을 올려놓은 이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공책을 선물로 주고 싶은데 직접주기는 부끄럽고, 또 책상위에 올려놓은 것보다는 학교에 오자마자 받게 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여학생의 실내화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한 것이다. 검정 고무신이 섬광 나는 패션운동화로 변했는데 아이라고 그대로 있겠는가?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다른 교실의 복도로 향했다. 신발장은 나에게 많은 메시지를 준다. 아침 7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실내화 자리에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였다면, 그 학생은 틀림없이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수업시작 시간이 가까워져 가는데도 신발장 속에 실내화가 놓여있다면, 그 학생은 학교를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복도를 거닐며 신발장을 살피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의 생활을 살피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펼쳐가는 교실 안을 살핀다. 신발장은 교실안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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