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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토끼 나는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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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토끼 나는 토끼
  • 정영희
  • 승인 2011.01.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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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여수 소호초등학교 교감

토끼해다. 토끼가 지혜로운 동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우화 속에 등장하는 토끼는 앞만 보고 달리는 백 미터 육상선수쯤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나는 얼마동안 토끼의 생태를 관찰하면서 우화(寓話)는 우화(愚話)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뒤돌아볼 줄 안다는 게 사람보다 낫다. 달리기 선수에게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토끼가 뛰어가다가 귀를 쫑긋 세우며 날 쳐다본다. 날 잡아보라며 약 올리는 일이 아니라 아무리 바빠도 인사는 하고 가겠다는 예의의 발로다. 이 정도면 복도를 뛰어가다 선생님께 단정하게 배꼽인사를 하는 일학년 학생쯤 되어 보인다.

분만 때가 되면 토끼는 포클레인 기사가 된다. 아니 암반 굴착기라 불러야 더 옳다. 이 때는 네 발이 아니라 열대여섯 개쯤으로 보인다. 한 삽의 흙을 퍼내기 위해 파고, 옮기고, 밀어내는 솜씨가 장인(匠人)이다. 입으로 물어 나르는 지푸라기는 둥지의 보온을 위한 라텍스(Latex)다. 불면증 기색이 보이는 사람이라면 편안히 누워보길 권한다.

굴착 솜씨에 울타리는 있으나마나다. 가둔다는 것은 내 착각일 뿐이다.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기우다. 새끼를 두고 가출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절대 닮지 않겠다는 좌우명을 붙여둔 모양이다. 시간이 문제지 반드시 회귀하는 습관을 지닌 동물이기에 체벌 논란도 없다.

울타리를 빠져나가는 방법도 날렵하여 뱀 척추 그 자체다. 허들을 뛰어넘는 재주도 있다. 척추는 활과 같아서 머리만 들이밀면 바늘구멍 빠져나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경계를 서는 모습은 여우같고 나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은 원숭이다.

물을 두려워하고 풀만 뜯어 먹으며 엉금엉금 기는 것이 거북이를 닮았을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유쾌하다. 토끼라고 얕잡아 봤다가는 종일 뺨맞을 일이다. 마른 나뭇가지를 잡고 쇠 울타리를 넘어갈 듯하다. 풀만 끊어먹고도 한 달은 넉넉하다.

학습방식도 철저히 자기주도적이다. 모두가 선생님이고 모두가 학생이다. 비좁은 교실공간도 풀밭으로 옮겼으니 친환경적이고 철저히 생태적이다. 밥도 받아먹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 나선다. 비만의 원인인 피자나 치킨은 줘도 아예 먹지 않는다. 이쯤 되면 뛰는 토끼가 아니라 나는 토끼다.

토끼 간에 소통도 원활하다. 묵계인지 새끼는 번갈아가며 지킨다. 곁에 있는 닭도 덩달아 토끼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 먹이를 놓고 다투는 법도 없다. 상생이란 이런 것이다. 앙숙도 천적도 없는 세상이 저 울타리 안에 있다.

폭설이다. 아니다. 토끼털이다. 하얘서 더 따뜻한 털이 함박눈이다. 얼마나 많은 토끼를 풀어놓아야 무등산의 설경쯤으로 보일까? 오늘 무등산이 몸집 큰 한 마리 토끼이거나 설원을 내닫는 토끼 무리들로 보인다. 학교! 새해에는 토끼처럼 설원을 뛰고도 모자라 푸른 하늘을 환하게 날아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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