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 숙려제 필요

김인순∥장흥장평중 교장

2020-01-09     김인순

최근 어느 연수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수중에 참 생각 깊게 발표를 잘 하는 젊은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30대나 될까? 참 기특하면서 든든한 선생님이구나 싶었다.

학급운영 연수에 젊은 선생님들보다 중견 교사와 원로교사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너무나 진지하게 배우고 있었다. 그 기운이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배우고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연수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는 자리에 몇 명 선생님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젊은 선생님은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하는 이야기가 귀를 의심하게 했다.

“저는 40대 중반인데요. 20여년 가까이 학교에서 막내를 하다가 최근에야 신규 후배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어른 노릇은 선배들이 도맡아 주셨는데 갑자기 막내에서 학교 선배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 걱정됩니다. 선배들은 대부분 50대 중반이라서 저보다 10년 이상 차이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믿고 따르며 멘토를 해주시던 분들이 갑자기 명퇴를 하는 바람에 많이 외롭고 힘듭니다. 아직도 배울게 많은데 선생님들이 자꾸 자리를 뜨시니 안타깝고 힘듭니다. 특히, 학생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떠나시는 걸 보면 더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한 학기 동안 조르고 부탁드렸는데도 결국은 명퇴 신청을 내셨어요. 법으로 명퇴 숙려제를 두면 안될까요? 생각할 기회를 충분히 드리게요.”

우연히 같이 한 자리에 40대 선생님들도 많았다. 그 선생님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맞아요. 선배님들이 자꾸 명퇴를 하시니, 정년까지 근무를 하려고 했던 마음이 자꾸 흔들려요. 특히, 좋은 선배님들이 학교를 떠나시니 정말 안타깝고 교육의 손실인 것 같아요.”

듣고 있던 50대 후반 선생님이 반색을 했다.

“진짜 젊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학교에 짐만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자꾸 눈치가 보여 학교에 남아 있는게 사실 좌불안석이었는데 후배들이 그리 생각한다니 정말 고맙네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바로 곁에서 아직은 학교가 필요로 하는 선생님들이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 학교만 해도 명퇴하는 선생님을 어떻게 하면 붙잡을 수 있냐고, 학생들이 교장인 내게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에게 민원을 내면 될까요?’ 나도 손 붙들고 말려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업무와 아이들을 챙기시고 마치 다시 오실 것처럼 인사도 특별히 하지 않고 떠나 가셨다. 아이들만 아쉬운 것이 아니라, 동료 교직원들도 나도 아쉽고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다.

새로운 교육을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 속에서 봇물처럼 명퇴의 행렬이 이어졌다. 정년을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져 버린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그 행렬이 줄어들면 좋겠다. 갑자기 쏟아질 신규 젊은 선생님들에게 본보기 선배 선생님들이 필요하다.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줄 어른이 필요하다.

소상히 알려주고 함께 감당해줄 선배가 필요하다. 당당하게 자랑스러운 정년을 맞이할 수 있는 학교 문화가 다시 써졌으면 좋겠다. 젊은 선생님이 절박하게 외치던 새로운 신조어가 귓가에 쟁쟁하다.

"명퇴숙려제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