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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조사(雨中釣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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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조사(雨中釣士)
  • 최대욱
  • 승인 2021.04.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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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욱∥거문중교장·교육학박사·전 한국교총부회장

오늘을 듬뿍 즐겨야 하는 예순 언저리에 서니   
세월을 낚는다는 말은 호기롭던 시절의 허세일 뿐이고     
푸른 바다가 선물하는 행복감을 건져가는 곳이 포인트의 기준이 된다. 

갑작스레 비를 맞은 바다는
잔잔했던 얼굴을 흐트러진 동심원의 주름들로 파헤치고    
밤새 꾸벅이며 졸던 등대는 아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일렬로 늘어선 채 덩달아 잠을 자던 갈매기 대열에서   
물 위로 나온 한 마리가 게으른 몸놀림으로 어슬렁거리니 
목구멍이 포도청임은 그들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듯하다. 

타이어에 빙 둘러 촘촘히 묶인 어선들은 
소인국에 묶인 걸리버 마냥
바다에 누워 신음하듯 조용한 엔진소리를 내고 있다.

희망에 부푼 낚싯대는 시원스럽게 채비를 날려 보내지만 
미끼는 신세를 한탄하며 유언장이나 쓰고 있지 않은지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바늘은 은폐를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빡스대는 
바람따라 물결 따라 춤을 추지만 노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신호를 보내는 임무는 개점 휴업 중이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착각 속에 희희덕 거리다 
갑작스러운 긴장감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채비들은 
투명 줄에 몰래 연결된 릴의 불호령으로 소환을 받는다. 

판초우의를 둘러쓰고 사색에 빠진 조사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채우지 않고 비워대다가   
오늘도 행복한 표정으로 푸른 바다만 듬뿍 담아 간다. 

조용했던 낚시터를 한 척의 배가 휘젓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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