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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인가 이타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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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인가 이타심인가
  • 노영필
  • 승인 2021.03.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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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교육평론가·철학박사

어른들은 어릴 때부터 쉽게 양보를 강조했다. 동생들과 다툼이 생겨 갈등이 생기면 어머님은 늘 “네가 더 크니 양보해라”고 타이르셨다.

돌이켜보면 양보를 가르치신 어머님의 말씀이 썩 내키지 않았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사람관계에서 중요하다는 뜻을 강조하셨지만 억울했다. 사실관계를 따지시기보다 서열과 이해심만으로 주문된 양보는 어린 나에게 접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한 동안 별 생각없이 어머님 방식 그대로 했다. 그러다가 큰 아이가 억울함과 서운함을 자주 터트렸다.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 눈치를 챘다. 가족 공동체를 강조하더라도 개인의 양보나 희생을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살면서 그런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교단에 서면서 가장 고약한 것이 싸움으로까지 번진 아이들의 갈등앞에 섰을 때다. 가령 싸운 두 사람을 앞에 세워두고 사실관계를 따져 누군가 잘못을 구분하더라도 꼬리를 무는 귀책으로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세상의 논리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니 절대적인 판정을 내리라고 하지만 고려할 상황들이 많아 쉽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흔히 만나는 갈등 앞에서 ‘참으라’는 말과 ‘양보’라는 말을 썼지만 만만치  않았다. 이제 참아라 양보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참으라는 말은 사건이 되지 않도록 기다렸어야 한다는 희생의 표현이고, 양보는 손해를 보라는 말이다. 모두가 이성적일 수 있다면 가능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다른 감정의 차이는 갈등을 만들 수밖에 없다.

참고 양보하라고 말하면 결국 이기적인 태도보다 이타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주문인 셈이다. 그러면서 중요한 차이는 묻힌다. 늘 그렇지만 싸움으로 번진 일은 복잡하게 얽힌 과정이 있다. 그것을 단순하게 참고 양보하자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중에 더 억울한 쪽이 분명히 있게 마련이다. 참아라 양보해라가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체로 양보는 힘의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 요구된다. 하지만 그것이 힘이 약한 사람은 무시로 감지될 수 있고 열패감으로 번질 수 있다. 건강한 이타심은 아니다.

차라리 “네가 양보했어야”의 결과보다 “어떤 과정과 선택이 너를 행복하게 만들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그 행복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비교할 수도 없고 그 정도를 정리할 수 없다.

결국 진정한 이타심은 이기심을 존중받을 때 가능해진 셈이다. 양보보다는 자존감을 주목하는 것이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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