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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트로트 가수의 꿈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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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트로트 가수의 꿈을 접는다"
  • 이기홍
  • 승인 2021.02.15 08: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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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前 목포교육장

나는 유년 시절부터 트로트를 접하며 자랐다. 유난히도 노래를 좋아하는 어머니 영향으로 당시에는 유행가라고 일컫는 트로트 노래를 즐겨 부르며 자란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학교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바보짓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불렀을 정도로 나는 트로트를 정서적으로 좋아했다. 

그러나 교직에 들어오고부터는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일부러 트로트 부르기를 애써 자제했다. 그래야 교육자답다는 평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마음속으로는 항시 트로트 가수에 대한 꿈을 접지는 못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동요를 치는 건반 연주 실력으로 트로트를 쳤고, 짬이 날 때마다 금영학원 석사과정을 밟는다며 노래방에 가서 목청을 가다듬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마치 무대에라도 오른 심정으로 성심을 다해 ‘영시의 이별’을 불렀고, 관객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도 가요무대 같은 가요프로를 많이 시청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에게 트로트 가수에의 꿈을 부추겼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전국노래자랑에 초대돼 나오는 가수를 볼 때였다. 저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방 축제에 나와 노래 부르는 가수 역시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지금 이 나이를 먹도록 나도 트로트 가수가 될 수 있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다. 각종 트로트 경연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를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잘나간다는 가수들 보다 훨씬 곡 해석도 기가 막히고 발성도, 기교도 더 잘하는 경연자들을 대하면서 가수 같은 가수의 모습을 거의 매일 접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꿈나무들의 실력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 그 어린 나이에 가사가 품고 있는 의미를 어쩌면 그렇게나 절절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터득할 세월도 없었을 터인데 그 섬세한 트로트 기법을 이렇게나 맛깔나게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고는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는 실력을 보면서 외마디 감탄 외에는 달리 쏟아낼 말이 없다. 시대가 만들어준 마당에서 펼치는 꿈에 천부적인 끼가 합쳐지면서 혹독한 검증에 깡으로 맞서는 그들이 위대하게 다가온다. 이제까지의 우리 가요계가 봉우리 몇 개 솟아있는 설악산 국립공원 정도였다면 앞으로의 가요계는 구름위에 솟아오른 봉우리들로 가득한 히말라야 산맥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온몸이 떨려온다.

내가 살던 지난날은 고등고시를 패스하는 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었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첩경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밑받침이 되어야 하는가를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연에 나와 결승권에 들기가 고등고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다간 정부차원에서 가요 고시라도 만들어줘야 합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별로 다듬어지지 못한 노래 한 두 곡을 가지고 음정 박자도 덜 떨어진 실력으로 몇 가지 기교에 의지해 가수 행세를 하는 실태를 보면서 무슨 대형 부정행위를 보는 것 같아 무척 불편했는데,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경연자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와, 우리나라에는 각계각층에 숨어있는 가수가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게 됐다. 정말이지 이제는 실력 없는 가수는 설 땅이 없게 됐다.

이제는 한 시도 노력하지 않는 가수는 설 무대가 사라졌다. 이제나마 억지로 노래를 들어주는 시대가 종식되어가고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지난 날 피와 땀과 눈물로 가꿔온 우리나라가 누가 뭐래도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 둘 바로 잡아져 가고 있는데, 그 중에 가요계도 진정한 의미에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난 하는 수 없이 나이 일흔에 평생 동안 품어왔던 트로트 가수의 꿈을 접는다. 아쉬움 반, 후련함 반이다. 한국 트로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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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2021-02-18 20:18:45
가수의 꿈은 접어도 노래는 계속하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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