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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렌즈 닦는 철학자'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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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렌즈 닦는 철학자' 스피노자
  • 호남교육신문 이하정 기자
  • 승인 2021.01.15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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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25)

스피노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그는 ‘신을 모독한 전형적인 유태인’임과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한 심오한 철학자’였다.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모욕을 받았으면서도 또한 열광적인 숭배자를 거느렸던 스피노자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 번 결혼해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는데, 스피노자는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난 둘째였다. 그의 생모는 그가 여섯 살 때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스피노자는 유태교 목사직을 꿈꾸며 성장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유태인 교회는 한 청년을 교회당 입구에 엎드리게 한 다음, 신자들로 하여금 그를 짓밟고 들어가게 했다. 교리에 어긋나는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파문을 당한 그 청년은 집에 돌아가는 즉시 자살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스피노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거니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스승의 딸을 연모하다가 거절을 당하고 만다. 이후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

스물네 살 되던 해에는 스피노자 자신도 교회에 불려갔고, 신학에 대해 침묵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연금을 제의받았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를 거절했다. 그때부터 그는 밀정으로부터 염탐을 당하고 뇌물공세에 시달린다. 심지어 암살당할 위기에까지 몰리다가 결국 온갖 저주를 받으며 추방령을 선고받고 만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그를 피했고, 셋방조차 빌릴 수 없었다. 선량한 사람을 만나 겨우 지붕 밑 다락방에서 살게 됐는데 3개월 동안 한 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스피노자는 안경렌즈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 와중에 출판된 그의 책들은 모두 금지도서목록에 올랐고, 당연히 판매가 금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지가 바뀐 책들은 여러 곳으로 팔려나갔으며, 격려의 편지와 함께 생활비가 전달됐다. 어느 부유한 상인은 천 달러의 기부금을 보내왔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150달러의 연금만 받기로 하고, 재산은 그의 동생에게 물려주도록 설득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다음에 출판할 저서를 자기에게 바칠 조건으로 거액의 연금을 제의해왔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를 거절했다. 한 영주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과의 정교수 자리를 제의해왔다. 스피노자는 매우 유혹적인 이 자리마저 거절한다. 대학 교수직이 자유로운 철학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던 데다 이미 안경렌즈 닦는 직업을 얻어놓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스피노자는 무척이나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는데, 돕겠다고 나서는 친구들로부터도 필요한 정도만 받았을 뿐 그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경렌즈 손질의 직업은 마침내 그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말았다. 먼지투성이의 작업장이 그에게 폐병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외롭고 고요한 사색의 삶은 45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고독하게 마감됐다. 스피노자는 그의 주저인 '에티카(윤리학)'의 원고를 일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책상서랍에 밀폐해 두었고, 혹시 자기가 사망한 뒤에라도 이 글이 분실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이 글은 친구들에 의해 간행됐으며 그밖에도 그의 중요한 저서들이 잇따라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스피노자(1632년-1677년)에 의하면 데카르트가 말한 정신과 물체는 오직 하나의 실체인 신의 두 가지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모든 존재자를 총괄한다는 의미에서 자연과 상통한다.

‘신은 곧 자연(세계)’이라고 하는 그의 주장이 곧 범신론(汎神論)이다. 이 범신론도 정통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거니와 유태교단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의 사상에는 무신론적 경향이 깃들어 있다. 

[광주교대 교수·철학박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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