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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 정영희
  • 승인 2021.01.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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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여수한려초등학교 교장

텅 빈 들판에 섰습니다. 어디선가 날아든 이름 모를 새들이 무리 지어 한 끼의 식사에 열중입니다. 가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려는지 목을 빼거나 날개를 털기도 합니다. 함께 오지 못한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있는지 주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새들도 저 멀리 듬성듬성 보입니다.

팬데믹 탓인지 올해는 겨울 철새의 발걸음도 확연히 줄었습니다.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시베리아에서 순천만까지의 항로는 익히 아는 정기노선입니다. 고의적인 일탈 비행인지 아니면 고립을 감행한 독거인지 몰라도 궤도를 벗어난 몇 마리가 어느 물가에 기착하였습니다. 흑두루미라고 하기엔 아직 어설퍼 보이지만 회색 면류관으로 보아 장래는 촉망됩니다. 

포구 풍경도 온기 가신 물 주전자처럼 썰렁합니다. 손님이 찾아야 덩달아 네온사인도 휘황할 텐데요. 이따금 갯바람 자락만 드나들 뿐, 햇무리조차 을씨년스럽습니다. 굳게 닫힌 가게 창문들도 햇살을 거부하는 것 같아 역병(疫病)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거란 예감입니다. 올겨울 강추위를 기어이 이기겠다는 심산일까요. 가로수마다 빨간 내의에 셔츠 깃을 두툼하게 밀어 올립니다. 가끔 발목을 데우고 있던 이파리들이 휴지조각처럼 흩어지기도 하나 얼마 못 가 제자리로 되돌아옵니다. 

코로나는 정치가 아니라 의학이라고 했습니다. 도무지 계량되지 않는 바이러스 충격에 늘어나는 건 걱정과 불안뿐입니다. 피로도는 급상승하여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백신 도입을 놓고 ‘안전이 먼저냐, 확보가 먼저냐?’ 문제를 두고 정쟁입니다. 대안 없는 막말을 듣고 있으려니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아시타비(我是他非) 같은 신조어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국민 안전을 볼모로 자기 입맛에 맞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눈감을 수밖에요. 차라리 뉴스를 끄는 게 행복한 일이겠지요. 겨울 들판이나 걸으며 철새의 군무를 즐기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운 일입니다. 이쯤 해서 남해안에도 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백색의 계엄령이 내려 온 세상이 몇 날 며칠 폭설에 갇혔으면 하는 무한상상을 합니다. 눈보라 군단이 곳곳을 점령하여 한 번쯤 포근하고 깨끗한 세상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무리의 철새들이 재도약을 준비하는지 겨울 들판이 갑자기 수런거립니다. 어느 어설픈 엽사의 과녁은 보이지 않습니다. 방역차는 논두렁길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구름처럼 물안개를 뿜어냅니다. 길가에 도열 했던 갈대들도 일제히 몸을 일으킵니다. 단잠을 들켰는지 잠잠하던 참새들도 수직 비행을 거듭하다 갈대 품으로 사라집니다. 

마스크를 쓴 사내가 차에서 내립니다. 방울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둑길로 향합니다. 칠면초가 보이는가 싶더니 마침내 희미한 소실점이 되어 사라집니다. 뒤따라가던 진눈깨비가 점점 함박눈으로 휘날립니다. 눈발에 반사되는 고결한 햇빛이 찬란하게 부서지는 날입니다.

시 한 편 올립니다.

오늘의 날씨

안개 조심하셔야겠네요
시계가 2m도 안 되네요

사회적 거리 꼭 유지하세요

키보드를 잘못 눌렀네요
안개가 아니라 비말*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날아다니는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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