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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가 생각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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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가 생각나는 이유
  • 박 관
  • 승인 2020.08.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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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칼럼니스트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장에 나오는 훈민정음 최초의 문학작품이다.

나의 고등학교시절, 중독성 있는 음률이 좋거니와 품격있는 시구가 너무 좋아서 외워보고 또 외워 보았던 멋진 서사시! 용비어천가 125장중에서 유일하게 훈민정음으로 만 표기된 이 장을 보고 있노라면 매료되지 않을 이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간결한 대구와 비유법을 통한 현실적인 감각. 이를 통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폭넓은 공감. 애국가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을 그 시절에 용비어천가는 조선의 애국가 여할을 충분히 해 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용비어천가가 주는 멋진 사연은 잠시 뒤로하고 거기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샘이 깊은 물처럼 ‘국가의 기본이 튼실해야 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장은 문학적 감성이 뛰어나다는 평에 앞서 심오하고 지혜로운 선조들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나는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이라.

2020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하여 광복회장인 김원웅씨가 말했다.

“친일파인 안익태에 의해서 만들어진 애국가는 바뀌어져야한다”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항일정신이 깃들인 터전에서 시작 되어야한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는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럽고 앞으로 절대 걷지 말아야 할 관계가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다. 안익태 씨는 나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친 나치적이거나 친일적인 행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잘 알지는 못한다.

단지 우리는 어린 시절에 우리나라 애국가를 만들어 놓은 위대한 인물로만 기억된다. 그 시대의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너무나 미화된 실상을 어린 우리가 어찌 알아차릴 수가 있었겠는가? 역사학자들이나 광복회가 어느 개인을 그것도 이미 죽어있는 사람을 매도하기 위한 작업으로 취부하기에는 너무 순리에 맞지 않다. 그가 그러한 행동을 했기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사고이지 싶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틀림없는 말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도 그러할 진대 국가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지금까지 불러온 애국가를 굳이 바꾸어야 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제 와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어렵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고 현실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의 자세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 서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에 의한 갈등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잠시 감춘다거나 속임으로써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명심해야만 한다.

지금 일선 초, 중등학교 현장에서는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사업’으로 친일음악가 작곡 교가, 일제양식의 석물, 욱일기 양식의 교표, 일제식 용어가 포함된 학생생활규정 등 친일잔재를 지우고 있다. 특히 친일에 가담했던 홍난파가 작곡했던 교가들은 모조리 새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동문들 입장에서 보면 여태 불려왔던 교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서운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잠시 서운한 마음 때문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그대로 전수하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기에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친일잔재 청산은 반드시 해결되어야할 민족의 과업이다. 이승만 정권 때 반민특위를 그렇게 무참하게 짓누르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처럼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해방이후의 연장선에서 우리의 역사는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지금이라도 애국가는 바뀌어져야하고 거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라가 언제 해방될 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 이들이 진정한 보수의 수호자들이어야지 북한과 싸워 이겨 나라를 지키겠다는 세력이 이 나라의 보수가 되어서는 결코 민족의 전망이 없음을 상기해 본다.

지금은 다소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겠지만 친일의 색채를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길로 나아 가야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최우선으로 주어진 보이지 않는 숙제이다.

모든 면에서 어렵고 불편한 대일관계 갈등에서 불현 듯 떠오르는 용비어천가가 오늘따라 더욱 멋스러움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기본이 바로 서 있는 국가의 자손”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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