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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 부른다고 화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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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 부른다고 화내지 말자
  • 박 관
  • 승인 2020.08.1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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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칼럼니스트

조선시대에 최고의 가치이자 종교와도 같았던 이념은 효(孝)사상이다. 거기에 물론 충(忠)까지도 들어가 있었지만 임금님이 차마 충까지를 말하지는 못했고 임금님은 효를 신하들은 충을 외연적으로 가장  역설하는 열할 분담을 했으리라.

3년 상(喪)을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대 상황은 내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머리를 깎지 않고 산에서 내려오는 시묘 살이 들을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30여 년 간 집에서 모셨던 부모님들이 거동을 하시기 어려워 요양병원으로 모셔야할 상황에 나는 서슴없이 그렇게 했다. 부모님은 가기를 싫어하셨지만 그때의 처지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어서였다. 그 과정에서 왜 나름의 고민이 없었겠는가?

요즘 카이스트 교수인 이병태 교수가 국회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슴으로 호소한다'는 글을 발표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해서 한번 들어 보았다. 같은 세대로서 역시 공감이 가는 대목들이다.

“대한민국 젊은 당신들이 누리는 그 모든 것들, 풍요와 자유. 그 어떤 것들도 당신들이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헬(Hell) 조선 이라 빈정거리지 말라. 부모세대야 말로 전부 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살아왔던 정서들이 그대로 녹아 있고 자칫 ‘꼰대 같은 소리’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일부 빗나간 젊은이들을 향하여 쓴 소리를 과감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히고 미루어 새것을 앎)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도 유효한 말일까? 물론 유효 할 때도 있지만 옛날에 비하면 턱없이 고리타분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전문서적도 별로 없고 정보가 미약했던 시절에는 선배나 선생님을 통해 모든 것을 알고 배우게 됐지만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기에 그러한 현상으로 되어가는 듯하다.

요즘 젊은이 들이 지칭하는 ‘꼰대’라는 명칭은 ‘옛날의 상황을 들먹이면서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가주기를 바라는 윗사람들에 대한 반감’에서 나타난 말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의 문명에서 너무 바쁘게 살아가야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들이 살아왔던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충고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바둑에서 인공지능(Ai)의 산물인 알파고의 훈수를 가벼이 여기고 옛날 정석을 강조하는 바둑사범들의 모습과 다름없다. 그것이 바로 꼰대의 전형이다. 젊은이들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격려와 칭찬의 대상이 돼야 하고, 설혹 실수했다 하더라도 용납되고, 용서해 주어야한다. 그것은 젊은이들에게만 주어진 사회적 합의요, 특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셔 놓고도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가책에서 조금 자유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너무나 좋은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하며 '부모 부양권이 자녀들에게 전적으로 있지 않다'고 선언한 정부의 흔쾌한 시대정신이 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맡길 수 있다. '이것이 효의 진화다'고 애써 자위해 보면서 말이다.

이병태 교수의 “우리 젊은이들이 부모세대들을 능멸하고 폄하 한다”는 지적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부모세대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별로 아는 것도 없던 젊은 시절, 나도 그랬다. 나와 맞지 않는 말로 훈계를 하는 어른들을 보면 꼰대라고 평가절하 했다. 사실 이렇게 꼰대가 아닌 척 말하고 있는 나 역시도 자녀들에게나 후배들에게는 꼰대일 수 밖 에 없다.

그래서 이병태 교수하고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인지 모른다. 그러나 온고지신의 의미가 서려있는 꼰대의 비아냥이 나의 모습이라면 화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우리의 젊은 시절에 우리 부모세대들은 우리를 히피족(Hippie) 같이 무질서하고 위태롭다고 질책했었다.

그런 질책과 걱정 속에서 자란 우리세대가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경제성장을 일구어 내고 찬란한 문화, 예술의 주역으로 우뚝 섰음을 상기해 보면 어른들의 걱정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음을 발견한다. 반복되는 세대간의 갈등과 생각차이는 인류의 탄생 이래 지속되어온 역사인식의 연속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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