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백성의 눈높이에 맞추라" 노자(4)
상태바
"백성의 눈높이에 맞추라" 노자(4)
  • 강성률
  • 승인 2020.07.21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 ⑮

유가는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한 사회에 있어서 인위적인 도덕에 의해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방법에 반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다.

유가에서는 인의(仁義)니 예악(禮樂)이니 어떤 규범과 덕목을 내세우지만, 노자는 이러한 모든 억지스러움을 버리고 차라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현자(賢者)에게 요구되는 무위자연의 도는 정치가나 통치자에게도 요구되게 마련이다.

특히 정치는 백성과 천하 만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무위의 도덕정치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정치가는 다변(多辯-말이 많음)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또 통치자는 많은 법률을 만들 필요 없이, 담담하게 스스로의 덕을 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정치가가 위선을 부리거나 힘으로 다스리려 하면, 백성들이 그를 불신하고 경멸한다. 천하에 금기조항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에게 편리한 기구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지며, 사람들의 재주가 많을수록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법령이 밝아질수록 도적도 많아진다. 이 모두가 억지로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현자를 특별히 대접하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서로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힘든 재물(財物)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도적질할 마음을 먹지 않게 되며, 욕심낼 만한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아야만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게 되지 않는다. 어진 임금이 천하를 다스려가는 방법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집을 피우지 않고, 백성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의 마음에 맞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맞추어나가면 된다. 설령 백성들이 귀로 듣기 좋은 것, 눈으로 보기 좋은 것에 대해서만 욕심을 낸다 할지라도, 천진난만한 갓난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다스려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성인(聖人)은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데, 가령 백성들이 죽는 것을 중하게 여기고, 먹는 음식을 맛있게 여기고, 입는 의복을 아름답게 여기며, 사는 거처를 평안하게 여기고, 행하는 풍습을 사랑하도록 하면 된다.

기괴하고 특별한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면 그만이다. 그리하면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노자는 정치론에 있어서 유가의 대통일 국가라는 이상에 맞서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小國寡民-소국과민)’이라는 이상사회를 제시했다.

나라의 크기는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만큼’이면 되는 바, 아마도 노자는 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묘사한 무릉도원과 같은 세상을 이상사회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무릉도원에는 금은보화로 치장된 궁전도 없고, 이상한 현상도 없다. 보통 사람들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이 장소에는 평화로운 전원풍경과 함께 복숭아꽃이 만발해있을 뿐이다.

발달된 문명도 없고, 편리한 기구도 없고, 갑옷과 무기도 필요치 않은 곳, 누구나 맘 편하게 먹고 마시며 살다가 원한 없이 죽을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낙원이 아니겠는가? 노자의 위대한 철학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다만 그 깊고 오묘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만한 제자들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 때문에 그의 학설은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돼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것이 무술(巫術)이나 마법, 연금술이나 불로장수법(不老長壽法)과 같은 미신과 뒤섞여버린 탓에 노자 자신의 순수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광주교대 교수·철학박사·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