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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자
  • 승인 2020.07.0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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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자∥낙안초 교장

비가 와서 주말마다 하는 산책을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잠깐이라도 걷고 싶어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나갔다. 규모는 작지만 이쁘게 잘 다듬어진 꽃과 나무등이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어 신록의 계절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몇 가지 운동기구와 등나무 아래 설치된 탁자와 의자, 주변의 벤치 등 쉼터로 쓰일 수 있는 시설물들이 사용해 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더구나 기구를 이용한 운동, 자전거 타기, 아이들 놀이하기 등 누구나 쉽게 이용 할 수 있는 곳인데다 맑은 공기가 더해져 기분이 상쾌했다.

이곳은 작은 규모의 공원이지만 3단계의 높이로 조성돼 있다. 제일 낮은 1단계 공원은 둥근 타원 모형의 도톰한 동산에 큰 나무가 심어져있고 동산 아래 주변 바닥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으며 조금 떨어진 한쪽 구석에는 사각형 모형의 등나무 쉼터가 탁자와 의자와 더불어 가족처럼 모여 있는 곳이다. 

두 번째 높이의 2단계 공원은 1단계 공원에서 계단 하나 정도의 경계석 높이를 오르면 1단계공원과 연결 되어 있다. 갓길은 우레탄으로 포장돼 있고, 중앙은 시멘트 바닥에 운동기구와 농구대가 설치돼 있다. 가장 높은 3단계 공원은 2단계 공원보다 상당히 높은 곳이다. 갓길 경사로를 이용해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보면 그 경사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아이보다 끌고 가는 아이들이 더 많을 정도의 높이로 돼 있다.

이곳 중앙부분은 2단계 공원과 경계가 되는 비스듬한 잔디 언덕이 길게 있고, 우레탄으로 된 갓길은 1단계 공원과 연결된 급경사로다. 이러한 3단계의 공원에서 저마다의 특징에 따라 손님들은 제각각 이용하고 있으며, 나 역시 우레탄으로 된 갓길을 돌고 있었다.

공원을 몇 바퀴 돌고 있을 무렵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각자의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다. 자전거도 자신들의 체격에 맞게 크기가 각각 달랐다. 제일 큰 아이로 보이는 아이가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1단계 공원을 돌기 시작하자 다른 두 아이도 ‘형’, ‘형’ 부르면서 뒤를 따랐다. 

아이들의 그 다음 행동들이 나의 관심과 시선을 끌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아이들은 5학년, 2학년, 1학년이었다. 5학년 아이가 ‘이제 몸 풀었으니 기술을 가르쳐 줄게’하면서 1단계 공원에서 2단계 공원으로 계단을 넘어 진입하는 것이었다. 2학년 아이는 1학년 아이보다 자전거도 크고 신체적 조건도 더 좋아서인지 금방 따라 올라갔다.

5학년 형은 2학년 아이를 향해 ‘통과’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고 통과한 아이는 엄지척을 하였다. 하지만 1학년 아이는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5학년 아이는 1학년 아이의 자전거를 타고 시범을 보였다. 계단 경계석을 넘을 때 상체와 자전거 머리를 조금 들어 올리라는 주문이었다. 다시 1학년 아이가 형의 가르침대로 몇 번 따라하더니 결국 성공했다.

이 아이 역시 ‘통과’라는 합격 싸인을 받고 콧노래를 부르며 좋아했다. 5학년 형은 두 동생들이 계단 경계석을 자유롭게 오르고 내릴 수 있을만큼 몇 번 더 연습시키더니 첫 번쩨 기술을 마무리 하고는 “이제 좀더 어려운 두 번째 기술을 가르쳐 줄게”라고 하면서 장소를 옮겨 갔다. 나는 세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궁금하여 자꾸 아이들쪽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 두었다.

다음 기술은 2단계 공원의 경사로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계단 3~4개 정도의 오르막 경사가 있는 만큼 쉬워 보이진 않지만 5학년 형의 힘찬 페달 밟기가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동생들이 열심히 페달을 밟아보지만 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다시 형은 페달을 빠르게 힘주어 밟으라 요구하면서 내려서 뒤를 밀어주다가 손을 살짝 떼면서 “되잖아”하면서 아이들을 칭찬했다.

형의 끈질긴 지도와 아이들의 거듭된 시도가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1학년 아이는 신이 나서 “형, 다음 기술은 뭐야?”하면서 형의 고난도 기술 전수를 재촉했다. 형은 “다음 기술은 어렵진 않은데 좁은길이라 집중력이 필요해”. “집중력이 뭔데”라고 1학년 동생이 묻자 “다른데 보지 말고 자전거가 가는 길만 신경써서 보라고”. “알겠어”.

두 아이는 새로운 기술 도전에 호기심을 안고 형을 따라갔다. 등나무 쉼터를 둘러쌓은 작은 통나무들과 큰길 언덕 사이의 좁은 공간을 자전거를 타고 통과하는 것이었다. 길이 아닌 곳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만들어버린 곳이다. 5학년 형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저 핸들을 똑바로 잡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 되는 곳이었지만 길이 아닌 곳이고 워낙 좁은 곳이다 보니 자전거 달인이라 여겨지는 5학년 형도 빨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동생들은 자전거 자체를 들여놓지 못하였다. 그러자 형은 “야, 이 기술은 다음에 가르쳐줄게, 패스”, “좋아, 형, 패스 패스”하고는 다음 단계로 이동했다. 그 다음 과정은 3단계 공원과 2단계 공원 경계가 되는 중앙 부분의 비스듬한 잔디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건 좀 어려운데 조심해야 돼, 너무 빠르면 언덕 아래로 구를 수도 있고 중심을 잃으면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다칠 수도 있어”. 언덕을 내려올 때 브레이크를 잡고 있을 것과 내려와서도 천천히 페달을 밟고 넓은 곳을 편하게 돌라는 주문을 하면서 5학년 형은 천천히 시범을 보였다. 내가 봐도 어렵고 조금은 위험해 보였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의 도전이 실행되기를 기대하였다. 그때였다. 운동기구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던 2학년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 위험하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시무룩해하며 하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으나 엄마는 결국 아이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위험성이 다소 있고 어려운 과정이긴 하지만 쉽게 쉽게 설명해줄 형이 있고 넘어진다해도 엄마가 옆에 계시니까 응급조치는 가능하기 때문에 도전을 멈추게 한 엄마의 행동이 안타까웠다.

또 2학년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 가득한 호기심을 억누르고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아이의 마음을 엄마는 헤아리기는 한 걸까? 이루어냈을때의 성취감과 자존감은 큰 향상이 있을텐데 엄마가 아이의 정신 성장을 꺾는건 아닌지, 내가 그 아이 엄마였다면 나는 과연 어떠했을까?

5학년 형이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남다른 호기심과 수많은 도전이 있었을테고 그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다른 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텐데 한 아이의 중도하차는 가르치는 입장인 아이에게도 실망스러움을 느끼게 했을 것 같다.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5학년 형은 1학년 동생만을 위해 고급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1학년 동생이 급경사 지역을 내려오는 짧은 순간을 두려워하자 아이의 뒤에서 자전가를 잡고 버티면서 따라 내려오기도 하고, 앞에서 핸들을 잡고 천천히 내려오는 연습도 했다. 이런 모습을 고군분투라고 해야하나 싶을만큼 여러번의 반복이 있었다.

어느 순간 1학년 아이는 “형, 놔둬봐, 나혼자 해볼게”라고 말하면서 거뜬히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5학년 형은 “통과, 통과, 통과”를 연신 내뿜으며 1학년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가 봐도 멋진 성공이고 승리였다. 5학년 아이는 다음에 또 가르쳐 줄게 있다면서 후일을 약속하고 오늘 배운 기술들을 연습하라고 했다. 

오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러 가지 자전거 타기 기술을 습득한 1학년 아이는 앞으로도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수많은 반복연습과 도전정신이 성공을 맛보게 해준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이 모습을 지켜만 보고 부러워 할 2학년 아이가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만, 기술을 전수하는자와 전수받는자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놀이를 통해 얻어지는 기쁨, 성취감, 긍정적 관계형성 등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배움의 현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직접 목격하는 시간이었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놀이시간을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공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또래들과의 또는 선후배간의 놀이를 적극 권장해야겠으며, 학부모님 대상 교육이 있을 때 이 아이들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믿고 도전을 허락하는 용기도 필요함을 강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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