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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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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봄!
  • 정영희
  • 승인 2020.04.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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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여수한려초 교장

올봄이 미쳤나?
절대 마주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소갈머리 없이 아무 곳에서나 머리를 들이민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안전 안내문자를 뭉개더니 오늘은 가는 곳마다 꽃 폭탄 세례다. 생태적 본성이라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너희들도 자숙하거나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는 게 옳다.

패닉panic 상태에 모든 체감지수가 빙점 이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국마다 침묵시위를 하는 듯한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오래된 흑백 전쟁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풍경이어서 엄청 낯설다. 길목마다 감염 예방 바리케이드가 버티고 있고 출구조차 틀어막아 고립된 느낌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 했더니 자진하여 가택까지 연금했는지 하늘이 깜깜하다. 단순한 물리적 수치가 정서적 유대관계까지 갉아먹고 있어 걱정이다. 이쯤 되면 예약전화 한 통에 목이 멘다는 음식점 주인의 말이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맘껏 누릴 수 있는 봄날이어서 좋다. 쟁점을 놓고 시각에 따라 비판이나 평가를 달리하는 것도 민주주의이기에 읽고 들을 만하다. 그러다가도 실수인지 모르겠으나 해명이라며 늘어놓는 말장난이 너저분해서 짜증스럽다. 총선 정국이라 진영논리에 매몰된 논설을 비교하여 읽는 재미도 별나다.

맹목적 논리와 해괴망측한 궤변, 생트집에 가짜뉴스까지, 컷오프됐다더니 다시 살아난 후보의 막말이 굴러다닌다. 화들짝, 잠이 깬다. 손가락 하나 건들지 않았어도 봄은 들이닥쳐 강물을 따뜻하게 데워놓았다. 미리 지펴놓은 군불은 없었지만 구들장에서 누가 속살거리는지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지난겨울 이상고온이 모두의 발바닥을 간지럽혔고, 앞당겨 온 세상에 꽃불을 질러놓았다. 그렇다고 무릎 꿇고 제발 이번 봄은 그냥 지나가라고 손 모을 일은 아니다. 느닷없이 먼 친구로부터 희귀한 들꽃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왔다.

기념비적 위력을 떨치고 사라질 올봄은 정말 미쳤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에 지칠 줄 모르고 피워 올리는 꽃들의 기세가 무섭다. 원컨대, 코로나 종식 문자가 빨리 날아들어 바람꽃의 종결자 ‘남바람꽃’이나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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