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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돌을 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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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돌을 놓으며
  • 박윤자
  • 승인 2020.03.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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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자∥낙안초등학교장

초임 발령이란 그 어느 곳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승진 발령은 더더욱 그렇다.

여건이 좋은 근무지를 내 뜻대로 정할 수도 없고 발령에 필요한 점수에 의해 정해지는 서열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며 무엇보다 발령당시 수급상황에 따라 운이라는 것도 작용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3년 전 나는 여수 돌산의 끝자락 봉덕초등학교로 교장 승진 발령을 받았다. 초임 발령지로는 너무나 감사하게 받아들여진 학교이지만 통근을 하려면 순천 집에서 55km 떨어진 곳으로 1시간의 소요시간이 필요한 곳이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운전이고 갱년기 증상으로 졸음까지 자주 나타나니 매일 출퇴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3월 2일 첫날부터 관사에서 생활하며 근무를 시작했다. 마을과 떨어진 곳이고 산 밑에 관사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관사에 산다는 것은 모두가 놀라워하는 상황이었다.

학교라는 곳은 누구도 건들 수 없는 대한민국 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스스로 강조하며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떨치려고 노력하며 생활을 해 나갔다. 무엇보다 운전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속의 공포감만 잘 요리하면 무서움을 이기는 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모든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혼자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만보걷기, 골프 연습, 책읽기, 혼자만의 시간을 잘 이용하니 정신적, 육체적 건강도 좋아진 느낌이었다. 주말이면 가족 곁에서, 주중에는 학교 관사에서 기거하며 3년을 보냈다. 그곳에서의 3년은 초임자로서 사명감이 작용했는지 열심히도 살았고 지역민, 학부모님, 교직원, 무엇보다 순수한 우리 학생들과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웃으며 생활했다.

초임 발령지에서 행복의 돌들을 수없이 놓고 또 놓았던 3년이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행복의 요소들이라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소망은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집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은 ‘바람’ 딱 그것이었다. 여러 가지 조건이 학교생활에 만족을 가져와도 집에서 다니고 싶은 욕망 하나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3년 만기가 돼서야 이곳 낙안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전보인사는 초임발령보다 나름의 계산을 하고 기대가 큰 편인데 운전 미숙자인 나에게는 좀 먼 학교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안초등학교까지는 19km이고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래도 ‘집에서 다닐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이유 하나가 다른 불편함을 덮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 여기며 새로운 행복의 돌을 하나씩 놓아가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가장 먼저 놓고 싶었던 행복의 돌이 아이들과의 만남에 의한 것이었는데, 코로나19로 무산되었으니 우리 교직원들과의 인연에 두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이 새로운 인연으로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겠다는 인사와 다짐으로 행복의 첫돌이 놓였다. 앞으로 내가 놓고 싶은 행복의 돌은 너무나 많다.

출퇴근 시간에 라디오나 시디를 통해 나온 것들이 오롯이 내 것이고, 봄의 소리에 귀 기울일 4월이 오면 길가에 늘어진 벚꽃, 살구꽃, 푸른 숲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내 감성을 깨울 것이며 온 국민의 발길이 이어지는 유적지요, 관광지인 낙안읍성이 우리 학생들과 더불어 내 운동장이 될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있으랴!

출퇴근 길이 멀다는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한 핑계일뿐이라 일갈하고 흩어진 기쁨들을 모아 새로운 행복을 창출하리라. '한 아이가 온전하게 자라려면 온 마을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작년부터 운영해온 마을학교가 낙안초에서 움트고 있다하니 이 또한 들여다보고 찾아서 놓아야 할 행복의 돌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재잘거리며 뛰어노는 날이 오도록 코로나19가 어서 빨리 물러나면 좋겠다. 아이들을 만나면 보다 반질반질 이쁜것들로 행복의 돌을 찾아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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