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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제경
  • 승인 2020.03.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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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경∥前 고흥교육장

박쥐하면 만화와 영화로 유명한 ‘배트맨(Batman)’이 떠오른다. 배트맨은 밤이 되면 박쥐 모양의 검은 슈트를 입고 출동해서 범죄와 악당을 물리치는 용감한 기사였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박쥐에 관한 설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농부의 집에 귀신이 출몰했는데, 그 귀신은 잘 대해 주면 1년 농사철을 미리 가르쳐주는 등 농부에게 은혜를 베풀었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언짢아지면 가마솥에 두엄을 넣어 두는 등 심술을 부렸다.

농부는 그 귀신에게 시달리다 못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양 귀신 퇴치법을 물었고, 귀신은 박쥐 삶은 물에 밥을 말아 먹이면 귀신이 사라진다고 답했다. 농부는 박쥐를 잡아 삶은 물에 밥을 말아 귀신에게 공양했고, 귀신은 그 밥을 먹다가 슬프게 흐느끼면서 소멸됐다.

박쥐는 젖먹이 동물로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포유류다. 극지방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천적은 뱀, 고양이, 매, 수리, 코뿔새 등이다. 박쥐에는 열매를 먹는 큰박쥐류와 벌레를 잡아먹는 작은박쥐류로 나뉜다. 하지만 과일을 먹는 과일박쥐나 가축의 피를 빠는 흡혈박쥐처럼 특이한 식성을 가진 종들도 있다.

과일박쥐류로 지칭되는 큰 박쥐는 반향정위(되돌아와서 울리는 소리로 위치 파악) 능력이 없고 시력과 청력을 이용해 먹이(주로 과일)를 찾는다. 작은박쥐류는 초음파를 내 반향음으로써 먹이를 찾으며 장애물도 피한다. 왕박쥐·애기박쥐·관박쥐·흡혈박쥐 등을 포함해 총 981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쥐는 해질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해 밤새도록 먹이를 사냥하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동굴의 벽이나 천장, 바위틈, 인가의 천장 속, 지붕의 기와 아래, 나뭇구멍 등에서 쉰다. 수천마리가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것과 단독 또는 몇 마리가 생활하는 것도 있다. 작은박쥐류는 날아오를 때 초음파를 발사해 그 반향을 발달한 귀로 듣고 장애물이나 먹이 등의 방향·위치, 포획물의 움직임이나 크기 등을 탐지한다.

이 때문에 좁은 동굴이나 무성한 삼림속에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박쥐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다른 보금자리에서 생활한다. 새끼는 보통 1년에 한 마리를 낳지만 일 년에 두 번 낳는 종도 있다. 박쥐는 대부분 해롭지 않지만 몇몇 종이 공수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식충성의 작은박쥐류는 모기나 나무좀 등 해충을 잡아먹어 유익하나 과일을 먹는 큰박쥐류는 과수원 등을 습격해 해를 끼치기도 한다. 박쥐 몸속에는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이중 약 60여종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람에게 전파돼 병을 일으킨다. 가장 많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이 바로 박쥐인 셈이다.

무리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박쥐는 다양한 바이러스를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박쥐를 ‘바이러스의 창고’로 불린다. 박쥐가 인간에게 질병을 옮긴 것은 1930년대 흡혈 박쥐가 광견병을 옮긴 것이 처음이다. 지금도 미국이나 남미에서 광견병은 주로 박쥐 때문에 걸린다고 한다.

박쥐는 최근 발생되는 여러 가지 신종 전염병 예컨대 메르스, 사스, 에볼라의 자연숙주로 알려져 있다. 사스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로 옮겨진 뒤 이 사향고양이를 통해 다시 사람에게 전파됐다. 2015년 국내에서 큰 피해를 냈던 메르스의 경우 박쥐가 갖고 있던 바이러스가 낙타로, 다시 인간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과일박쥐가 숙주로 알려졌다. 서아프리카 주민들은 과일박쥐를 직접 먹거나 다른 야생 동물을 잡아먹는 바람에 에볼라에 감염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과일박쥐의 니파바이러스가 야자 열매 수액을 오염시켜 사람으로 전파된 사례도 있다. 특히 이번에 중국 우환에서 발병해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적으로 감염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로 박쥐가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다양한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는 박쥐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박쥐 몸에는 최대 200여종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지만 박쥐 자신은 질병에 무적이다. 특유의 면역체계 때문이다. 수평 비행속도가 무려 시속 160km에 달해 날 때 체온이 40도까지 올라가면서 면역계가 활성화된다.

이처럼 높은 온도에서는 바이러스가 잘 자라지 못하게 된다. 감기에 걸려 사람의 체온이 상승하면 바이러스가 약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포유동물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인터페론이란 단백질을 만든다. 그런데 박쥐는 평상시에도 항상 일정한 수준의 인터페론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바이러스 공장인 박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쥐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까. 박쥐는 모기와 나방 같은 해충을 없애고, 꽃가루를 옮기는 유익한 역할도 수행한다. 그러니 모택통이 참새를 박멸해 중국에 대기근을 야기했듯이 박쥐를 없앤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자연계의 안정과 질서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 순리다. 

신종 바이러스의 경우 사실 백신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백신을 개발하는 데는 보통 몇 년씩 걸린다. 그래서 이미 퍼질 대로 퍼져서 병이 종식된 다음에 개발되는 게 보통이다. 같은 바이러스가 다음번에 다시 퍼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 이미 면역이 생긴 다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방역을 철저히 하는 등 전파를 막고 미리미리 조심하는 것이 당장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 돌기 모양 입자 표면이 왕관을 연상시켜 라틴어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에서 이름을 따온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자연환경 파괴가 억제되지 않는 한 바이러스의 공격은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를 인류는 깊이 있게 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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