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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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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말없이
  • 나동주
  • 승인 2020.02.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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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前 영광교육장

두고두고 못 다한 말 /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 / 말없이 가오리다   
  -가수 현미의 노래 '떠날 때는 말없이'가사 중 일부-

작별은 열병처럼 찾아오는 마음의 허전함을 동반합니다. 작별은 누구에게나 감당 못할 저린 슬픔이기에 날이 셀 때까지 ‘안녕’이라고 말하지만 매번 정적(靜寂) 속에 묻혀 그 고요만이 침묵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역시 ‘떠날 때는 말없이’입니다.

나는 아무 미련도 없는 척 그 곳을 떠났습니다. 섭섭하지만 아주 많이 섭섭하지 않은 것처럼 속마음 감추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이제 내 생(生)의 한 시절을 통과했으니 가장 익숙한 것들, 가장 사랑했던 것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것들, 이 모든 애증(愛憎)의 그림자들과의 작별을 예감하는 일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작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나지만, 거두어야 하는 사랑은 쉽게 부식(腐蝕)됨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가능’보다는 ‘불가능’을 하나씩 하나씩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나이가 결코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은 길러줍니다. 이제 일곱 번째 계단을 오르기 위해 여섯 번째 계단에서는 힘을 비축해야겠습니다. 상심한 별이 빈 가슴에 가볍게 떨어지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목마와 숙녀'처럼 세월은 가고 오는 것입니다.

온갖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당당하게 지켜 온 내 삶이 바로 기적입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바르게 걸어 다니는 지극히 소박한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끊어질 듯 이어진 이 기적 같은 삶에 정년(停年)이 찾아왔습니다. 파란(波瀾)이 만장(萬丈)했던 내 삶의 무대가 황혼으로 저물고 여명(黎明)의 아침이 새 날로 밝아옵니다. 나의 신새벽은 희망을 머금었습니다.

아! 이제 나는 ‘떠날 때는 말없이’를 읊조립니다. 허름한 가방 속에 달랑 몇 권의 책이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떠나는 사람의 가난한 봇짐입니다. 봇짐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입니다.

“아듀(adieu), 전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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