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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나 가리지 말아주시오, 디오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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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나 가리지 말아주시오, 디오게네스"
  • 강성률
  • 승인 2020.02.2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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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 ③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디오게네스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 까닭을 묻자 “내 눈으로는 현자(賢者)를 찾기가 힘들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미 당대의 기인(奇人)으로 소문난 그가 거리의 큰 통 속 같은 데서 살고 있을 때였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대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고 묻자, 디오게네스는 태연히 “햇볕이나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대왕은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기꺼이 디오게네스가 되겠다.”고 말하며 물러났다고 한다.
 

디오게네스에게 이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은 무가치할 뿐 아니라 귀찮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한 순간의 따사로운 햇볕보다도 못했다. 디오게네스는 무욕한 생활, 개 같은 생활을 즐겼다. 아무 것도 갖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보는 일도 없이, 주어진 대로 먹고 아무 데서나 잠자는 생활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삶의 이상이었다.

그의 재산이라고는 물을 떠먹기 위해 갖고 다니는 그릇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 이 그릇마저 내동댕이치고 말았다고 한다. 인간이 아무런 소유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왔던 디오게네스이지만, 아직 자신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다.

원래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런 소유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문화의 편리에 젖어버렸기 때문에, 옛날의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의 탐닉으로부터 벗어나 원시상태의 단순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디오게네스가 속한 학파를 우리는 키니코스학파라고 부르거니와, 이 말은 키온(Kyon-개)이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한다. 또 이를 두고 견유학파(犬儒學派)로 해석하는 것도 개(犬)와 관련돼 있음을 나타낸다. 디오게네스가 생활목표로 삼은 무욕(無慾)과 자족(自足), 그리고 무치(無恥-부끄러워하지 않음)는 바로 개의 생활을 가리킨다.

개는 현재의 배고픔만 해결하면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다. 부도, 명예도, 권력도 그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또 그들은 현재의 처지에 스스로 만족한다. 배부르면 따뜻한 곳을 찾아 잠자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 그리고 개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무 데서나 먹고 잠자고 즐긴다.

인간 역시 개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수치심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에 거슬러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려는 잘못된 풍습과 문명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체면문화, 다른 사람과 자신을 견주어보고자 하는 비교의식,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려 하고,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교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고 싶으면 이러한 것들을 타파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자유롭고 싶으면 자연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쳐부수어야 한다.

무욕과 자족, 무치, 풍습무시, 반(反)문명의 사상을 실천한 디오게네스는 기원전 400년부터 323년 무렵까지 생존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큰 통을 집으로 삼아 걸식에 가까운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광주교대 교수·철학박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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